왕녀(옹주)묘

(선조) 정화옹주, 동창위 권대항 -안동권씨-

보현당 2014. 11. 1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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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옹주, 동창위 권대항

 

유명 조선국 자의대부 동창위(資義大夫 東昌尉)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兼五衛都摠府 副摠管) 권(權)공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중훈대부(中訓大夫) 전 행 사헌부장령(前行司憲府掌令) 허목(許穆)이 짓고 전서 하였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 전 행 사간원 정언(前行司諫院正言) 조위명(趙威明)이 쓰다.

권(權)씨는 본래 신라의 후손이다. 시조인 태사(太師) 행(幸)은 고려를 섬겨 권(權)씨 성(姓)을 받았다. 자손이 존귀하고 현달하여 영도첨의 부(溥)에 이르러 그 세대가 더욱 커졌는데, 공에게 11대가 된다.
공의 이름은 대항(大恒)이고 자는 응정(應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영의정 동흥부원군(東興府院君)에 추증된 상(常)으로, 효행이 특히 소문이 나서, 5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훈도가 마을에 남아 있다. 집에는 효자 정문(旌門)이 있다. 할아버지는 행 도승지를 지내고 우의정에 추증된 희(憘)인데, 역시 소경(昭敬 : 宣祖의 시호) 때의 명신으로, 태사(太史)에 관한 일을 하였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익중(益中)으로, 일생 성실하고 친절한 행실로 수직(壽職)을 받았고, 죽어서 귀하게 되었다. 어머니 정부인(貞夫人) 조(趙)씨는 본관이 한양(漢陽)인 양절공(良節公) 온(溫)의 8대 손이며, 현감 서(瑞)의 딸이다.
만력(萬曆) 38년(광해군 2, 1610년) 경술 10월 19일에 태어나, 순효대왕(純孝大王) 8년(인조 8, 1630년) 정화옹주(貞和翁主)에게 장가들어 관례대로 동창위(東昌尉)로 봉작되었다. 병자호란 때 임금을 남한산성(南漢山城)까지 호위하며 따른 공로로 자의대부(資義大夫)로 승진하였으며, 거듭 금군(禁軍 : 임금을 호위 경비하던 친위병)을 맡았고 부총관이 되었다.
성품이 충실하고 소박하며 성실하고 신중하였으며, 검소한 것을 즐기고 선행을 하였다. 남에게는 겸손하고 정숙함으로 공대하였지만, 존귀하다고 자처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연세가 높아짐에 공 또한 기력이 약해져갔어도, 모시는 것을 성실히 하고 게으르지 않았다. 명절과 생신 때마다, 친척과 손님을 모시고 장수를 빌며 술잔 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기쁨을 드렸다. 인애가 돈독하여 가난한 사촌형제들이 공의 도움을 기다려 밥을 짓는 것이 마치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사람 같았다.
임금 재위 7년(현종 7, 1666년) 병오 정월 4일에 공이 별세하니 향년 57세이다. 임금께서 예법대로 상주를 위로하고 물건을 하사하고,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장사지내주도록 한 것도 예이다. 다음 달 양주 어등관암(楊州 於登寬岩) 언덕에 묻으니, 외조 · 증조의 2대의 분묘가 이곳에 있다. 조(趙)씨의 제사는 공이 사후의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옹주는 소경(昭敬 : 선조의 시호)대왕의 딸로 온빈(溫嬪) 한(韓)씨 소생이다. 한(韓)씨는 중고(예전)재상인 계순(繼純)의 6대 손이다. 옹주는 소경(昭敬 : 선조의 시호)대왕께서 돌아가시기 4년 전인 갑진년(선조 37, 1604년) 2월 22일에 태어나셨고, 다음 갑진년 4년 후인 정미년(현종 8, 1667년) 9월 24일에 별세하시니 향년 64세셨다. 이듬해 3월 같은 언덕에 함께 묻었다.
자식이 없어 형의 아들 덕휘(德徽)를 후사로 삼았는데 지금 한산군수이다. 자식은 4남 4녀로, 아들 처경(處經) · ▨경(▨經), 사위 심최량(沈最良) · 이▨(李▨)이며, 나머지 아이들은 어리다. 또 측실에서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덕찬(德纘)이고, 딸은 태상 주부 송윤길(宋胤吉)에게 시집갔다. 명(銘)하기를,

온화하고 검약하며 행실은 바르고 매우 자애롭도다.
귀하면서도 낮추고 부유하면서도 가난하게 지내니
선행을 쌓는 집안에 대대로 인재 있으리라.

숭정(崇禎)무진후 45년(현종 13, 1672년) 임자 7월 일에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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