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왕실)묘

(덕천군파) 신종군 이효백[공간공], 현부인 예안최씨 -전주이씨-

보현당 2017. 5. 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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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군 공간공 이효백

1433년(세종 15)~1487년(성종 18). 조선 초기 종친.  본관은 전주(). 자는 희삼(). 조선의 2대 임금이었던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 이후생()의 아들이며, 부인은 동지중추부사 최경례()의 딸 예안현부인 최씨( )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이름을 효백()이라 불렀고, 궁술()이 비상하여 1459년(세조 5) 임금이 직접 참가한 모화관()의 시사()에서 모두 30발의 화살 중 29발을 과녁에 명중시킨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세조의 특명으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정의대부(:종2품 종친계)에 오르고 1467년(세조 13) 신종군()에 봉하여졌다. 그 해에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세조가 친정()을 떠날 때 선봉장으로 내정되었고, 이듬해에는 무과에 급제하여 품계를 더하였다. 종친()은 전례에 따라 부시()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세조가 그해부터 특별히 부시를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종이 즉위한 후에는 임금의 명으로 착호갑사()와 겸사복을 거느리고 양주 등지에 호랑이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1468년(예종 즉위년)에 승헌대부(:정2품 종친계)에 올라 겸사복장()에 제수되었으나, 학식이 없음을 이유로 후일 학업을 성취한 후 다시 기용하기로 하고 체임되었다. 성종 때에는 임금이 하사한 활에 금이 갔다는 이유로 내관을 시켜 바꾸려 하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아우 이효숙(), 이효성(), 이효창()과 함께 4형제가 모두 활을 잘 쏘았는데, 그 중 가장 잘 쏘아 세조, 예종, 성종 등 역대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 거평정() 이복()과 진례정() 이형() 등 일곱 사람과 함께 사종()이라 일컬어진다. 시호()는 공간()인데, 일을 공경하여 웃사람에게 이바지하는 것이 공()이요 평이()하고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효백[李孝伯]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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