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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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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당의묘지기행209

(고려무신) 철원부원군 무민공 최영, 삼한국대부인 문화류씨 -동주최씨- 최영(崔瑩, 1316년 ~ 1388년)은 고려 말기의 장군 겸 정치가이다.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아버지는 최원직(崔元直)이고, 어머니는 봉산 지씨(鳳山智氏)이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우왕의 왕비인 영비 최씨는 그의 서녀였다. 군관으로 출사하여 우달치에 임명된 뒤 관직은 육도 도순찰사, 양광, 전라도 왜적 체복사 등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했고, 1376년(우왕 2)에는 왜구의 침략 때, 육군을 이끌고 논산군 연산의 개태사(開泰寺)로 올라오는 왜구를 홍산(鴻山)에서 크게 무찔러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작되었으며, 여러 번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인임 등을 멀리하였고 1388년 이인임, 염흥방을 .. 2023. 2. 12.
(유학) 희숙 윤지성, 유인 함양여씨 1665년(현종 6)∼1696년(숙종 22). 조선 중기 유생. 자는 희숙(希叔)이다. 본관은 무송(茂松)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충훈도사(忠勳都事) 증좌승지(贈左承旨) 윤인연(尹仁演)이고, 조부는 충좌위부사용(忠佐衛副司勇) 윤송주(尹松胄)이다. 부친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충좌위부사과(行忠佐衛副司果) 윤유일(尹惟一)과 모친 여산송씨(礪山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군수(郡守) 여규제(呂奎齊)의 딸 함양여씨(咸陽呂氏)이다. 타고난 성품이 뛰어나게 영리하고 총명하였으며, 가정에선 효성스럽고 어른을 모실 때는 공손함을 다하였으며, 사람들과 사귈 때는 성의를 다해서 선비들이 즐거이 교유하고자 하였다. 나이 15세에 참판(參判) 송국(宋鞠)으로부터 학문을 익혔는데 문장공부에 힘써 문사에도 .. 2023. 2. 7.
(태종 부마) 길창군 제간공 평윤 권규 -안동권씨, 경안공주- 권규(權跬, 1393년 ~ 1421년)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태종의 사위이다. 권근의 아들이며 권람의 삼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1세(1403)에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딸 경안공주와 혼인하여 길천군(吉川君)에 봉해졌다. 1416년 다시 길창군(吉昌君)으로 봉해졌다. 1421년, 29세의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다. 권규는 온후한 성품에 효심이 깊고 검소하였는데 그가 죽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관가에서 준비하였다. 2023. 2. 3.
(태종) 경안공주[경안궁주]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년 ~ 1415년 5월 30일(음력 4월 22일))는 조선의 공주로,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딸이다. 경안공주는 1393년(태조 2년), 당시 정안군이었던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민씨(원경왕후)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태종이 즉위하면서 경안궁주(慶安宮主)로 책봉되었다. 1403년(태종 3년) 12월 18일, 권근(權近)의 아들이자, 이존오(李存吾)의 외손자인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년)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楊弘達)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그 신분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 이후 경안공주의 남편인 권규 마저 요절하였기 때문에 경안공주의 자녀들은 궁에.. 2023. 2. 2.
(문신, 공신) 안천군 안숙공 오미 권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 -안동권씨, 정난공신- 조선전기 호조판서,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고, 아버지는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어머니는 우정언 이존오(李存吾)의 딸이다. 형은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1427년(세종 9) 공신의 아들로서 감찰에 기용되어 1430년(세종 12)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공법(貢法)의 제정에 있어 척박한 산전(山田)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 평야지대의 전답과 같이 논한다면 폐단이 크므로 수령에게 밭주인의 신고를 받아 직접 그 경작여부를 답사한 연후에 조세를 거두도록 건의하였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으로 진구(賑救: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함)을 살피기 위하여 강원도와 함길도에 파견되었.. 2023. 2. 1.
(문신) 정랑공 김자온, 숙부인 김해배씨 -경주김씨- 본관은 경주. 김인관(金仁琯)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김영백의 둘째아들인 양주목사 김대(金玳)이다. 어머니는 하음최씨(河陰崔氏)로 부제학 최급(崔岌)의 딸이다. 상촌 김자수(金自粹)와는 사촌간이다. 1401년(태종 1) 문과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1410년(태종 10)에 사노비를 부당하게 획득하여 죄를 받았다. 예조좌랑을 거쳐 1414년 충청도도사, 1419년 병조정랑, 형조정랑을 지냈다. 불경죄로 경상남도 양산(梁山)으로 귀양갔다가 1424년(세종 6)에 풀려났다. 1476년(성종 7) 직첩을 돌려받았으나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다. 2023. 1. 28.
(문신) 현감공 김의일, 숙부인 이천서씨 -경주김씨- 본관은 경주 퉁정대부 행 흥양현감을 지내셨다. 2023. 1. 28.
(문신, 좌익원종공신) 중추원사 양평공 권지, 정부인 용인이씨 -안동권씨- 본관은 안동, 부는 문경공 권제이시다. 실록 졸기에 사람됨이 관후하고 관직에 있어 일을 처리함에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할때 온화 하여 화기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시호는 양평이며, 권람의 형님되신다. 2023. 1. 27.
(공신) 길창부원군 소한당 익평공 권람, 영원군부인 고성이씨 -안동권씨, 충북 음성군- 조선시대의 문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시호는 익평(翼平).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한명회와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깊은 교우관계를 가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감찰(監察)을 거쳐 이듬해 교리(校理)로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함께 편찬하던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과 가까워졌다. 단종 즉위 후 한명회의 원모(遠謀)의 뜻을 같이 하고 수양대군에게 접근, 그의 참모가 된 뒤, 양정(楊汀)·홍달손(洪達孫) 등 무장(武將)을 포섭했다. 53년 (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에 특진, 55년 세조 즉위와 함께 이조참판(吏曹參判)에 발탁되었다. 이어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으로 예문관대제학(.. 2023. 1. 27.
(공신) 길창부원군 문경공 권제, 정경부인 전의이씨 -안동권씨- 본관은 안동. 초명은 도(蹈), 자는 중의(仲義)·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할아버지는 검교정승 희(僖)이고, 아버지는 찬성 근(近)이다.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음보(蔭補)로 경승부주부에 기용되었으나, 감찰로 있을 때 대사헌의 비위에 거슬려 파면되었다.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에 급제한 뒤, 세종초에 집현전부제학·대사헌·한성부윤 등을 지냈다. 1435년(세종 17) 이조판서가 되고, 이듬해에는 〈동국연대 東國年代〉를 편찬했다. 그뒤 예조판서·예문관대제학·지중추원사를 거쳐, 1442년 지춘추관사로서 신개(申槩)와 함께 〈고려사〉를 편찬했다. 1445년 우찬성이 되어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저서에 〈지재집〉·〈역대년세가 歷代年世歌〉·〈영가연괴집 永嘉連魁集〉..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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