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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덕여 김이기, 정부인 청해이씨

by 보현당 201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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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여 김이기

8대조 할아버지를 향리에 모셔놓고 이때부터 이곳은 저희 가문에 선영이 되었습니다. 7대조 할아버지 형제들은 어디서 사셨을까? 형제분은 모두 세 분인데 김달행의 장자는 저의 7대조 김이기, 차자는 김이중으로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부친이고, 막내는 김이경입니다. 그러면 한중록에 실려 있는 당시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어머니는 형제가 세 분인데 그 중 일찍 홀어머니가 되신 김생원댁(김달행의 부인)을 어머니께서 극진히 섬기셨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께서 이종들을 자식같이 불쌍하게 여겨 양식과 옷을 대여 주셔서 배고픔과 추위를 잊게 하였다. 그래서 이종들이 항상, “사람마다 어머니가 한 분이지만 우리는 두 분이시다. 라며 감격하였다. 이종 김이기씨는 신유년 늦봄에 외가에서 혼인을 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가 계셨다. 막내 작은 어머니이신 이모 송참판댁 장녀도 외가에 가 계셧다가 그 혼인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참석하였다. 나는 그 때 상복 입을 나이가 되지는 않았다. 흰 옷을 입었더니 어머니는 나에게 , “ 남은 저렇게 곱게 입었는데 너도 저렇게 입어봐라, ”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할아버지 상복을 입어야 하니까 다른 아이들과 같이 빛깔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되지요. ” 나는 문밖에도 나가지 않고 몸가짐을 삼갔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도 보통 때 가르친 교훈 때문인 것 같다.

<<출처: 김철동님자료내용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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