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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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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33

(29) 회인원(懷仁園) - 회은황태손(懷隱皇太孫) 이구(李玖, 1931년 12월 29일 - 2005년 7월 16일)는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대한제국 황실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이며, 대한민국의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 사업가이다. 일제 강점기의 이왕가의 이왕세자(李王世子)이기도 했다. 한때 대한민국에 귀국,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건축공학과에 교수로 출강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일제 강점기의 두 번째 이왕(李王)인 의민태자 이은(李垠)과 비(妃) 의민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건축설계사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도 활동하였다. 한때 귀국하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먼 일족인 이승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군사 정권 박정희 때에 일시적으로 귀국하였으나.. 2023. 6. 15.
(29) 회인원(懷仁園) - 회은황태손(懷隱皇太孫) 이구(李玖, 1931년 12월 29일 - 2005년 7월 16일)는 대한제국의 황족이자 대한제국 황실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이며, 대한민국의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 사업가이다. 일제 강점기의 이왕가의 이왕세자(李王世子)이기도 했다. 한때 대한민국에 귀국,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건축공학과에 교수로 출강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일제 강점기의 두 번째 이왕(李王)인 의민태자 이은(李垠)과 비(妃) 의민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건축설계사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도 활동하였다. 한때 귀국하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먼 일족인 이승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군사 정권 박정희 때에 일시적으로 귀국하였으나.. 2023. 6. 1.
(15) 광해군묘(光海君墓) - 광해군(光海君), 문성군부인(文城君夫人) 문화류씨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과 칭찬은 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2015. 11. 25.
(14) 목릉(穆陵) - 인목왕후(仁穆王后) 연안김씨 목릉(穆陵) - 인목왕후(仁穆王后) 연안김씨 -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9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이때 광해군이 세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당시 실권자였던 유영경(柳永慶)은 적통론에 입각하여 적출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유영경 일파는 몰락하고 대북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조의 첫째 왕자인 임해군(臨海君)을 제거하고 이어서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킨 뒤 살해하고, 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을 사사시키고, 인목왕후를 폐비시킨 다음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이러한 패륜행위는 결국 정변의 구실을 주게 되어 인조반정이 .. 2015. 9. 5.
(14) 목릉(穆陵) - 선조(宣祖), 의인왕후(懿仁王后) 반남박씨 목릉(穆陵) 선조(宣祖), 의인왕후(懿仁王后) 반남박씨 - 재위기간 : 1567년 ∼1608년 선조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1552년(명종 7) 11월 11일 한성 인달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바르고 용모가 빼어나 순회세자를 잃고 후사가 없었던 선왕 명종의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 하성군에 봉해졌다가, 1567년(명종 22) 명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그해 7월 3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매일 경연에 나가 토론하고, 밤늦도록 독서에 열중하여 제자백가서를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선조는 훈구세력을 물리치고 이황, 이이 등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다.『유선록』, 『근사록』, 『심경』, 『소학』, 『삼강행실』등을 편찬케 하여 유학을 장려하는 .. 2015. 9. 5.
(13) 강릉(康陵) -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강릉(康陵)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34년(중종 29) 5월 22일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 12월 21일 경원대군에 봉해졌으며, 1542년(중종 37) 11월 심강의 딸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45년 7월 6일 인종의 뒤를 이어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탓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 사건 등을 계기로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과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권은 실추되고 외척 일족의 수탈로 민생이 피폐하여 사회가 불안하였으며,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명종이 20세가 되던 해인 1553년(명종 8)에는 문정왕후가 8년 간의 수.. 2015. 9. 5.
(12) 효릉(孝陵) - 인종(仁宗), 인성왕후(仁聖王后) 반남박씨 효릉(孝陵) 인종(仁宗) 인성왕후(仁聖王后) 반남박씨 - 이름은 호(峼). 자는 천윤(天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1520년(중종 15) 세자로 책봉되었다. 1522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신(儒臣)들과 옛 글을 강론(講論)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웠으며, 중종이 병이 들자 침식을 잊고 간병에 정성을 다했다. 1544년 11월에 즉위했으나 병으로 제대로 정사를 살피지 못했다. 1545년 기묘사화 때 희생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기준(奇遵) 등을 신원하고 현량과(賢良科)를 다시 설치했다.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죽었다. 능은 경기도 고양군에 있는 효릉(孝陵)이다. 시호는.. 2015. 7. 31.
(11) 태릉(泰陵) -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태릉(泰陵)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 문정왕후는 1501년(연산군 7) 10월 22일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태어났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2년 뒤인 17세 때 왕비로 책봉되었다. 당시 인종이 세자로 책봉된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자, 기존의 세자를 폐하고 경원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소윤(小尹)과 기존의 세자를 지키려는 대윤(大尹) 간의 권력싸움이 조정을 어지럽게 하였다. 이 가운데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이 득세하는 걸로 당쟁이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정권은 경원대군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로 넘어왔다.. 2015. 7. 31.
(11) 희릉(禧陵) -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희릉(禧陵)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장경왕후는 1491년(성종 22) 7월 6일 영돈령부사 윤여필의 딸로 태어났다. 1506년(중종 1) 궁중에 들어와 처음에는 숙의에 봉해졌으며,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가 폐출되자 1507년(중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515년(중종 10) 원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경복궁 동궁 별전에서 25세의 나이로 승하하셨다. 희릉은 처음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獻陵)의 서쪽 언덕에 조성하였다, 그런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가 세자인 인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일으켰다. 그 중 하나가 희릉 천릉사건이다. 이는 김안로가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 주장하여 1537년(중종 32) 현재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 2015. 7. 31.
(11) 온릉(溫陵) - 정비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는 1487년(성종 18) 1월 14일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 13세의 나이로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가례를 올렸다. 1506년(연산군 12)에는 반정으로 인해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왕비의 오빠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여기서 비롯될 훗날의 화를 잠재우기 위한다는 반정세력의 명분에 따라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위 당하였다. 폐위 당시 20세였던 단경왕후는 1557년 12월 7일 71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온릉은 폐비의 신분으로 승하한 단경왕후의 능이다. 따라서 능을 조영할 당시에는 왕릉의 상설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1739년(영조 15) 복위되어.. 201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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