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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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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33

(추존) 경릉(敬陵) - 덕종(德宗) 경릉(敬陵) - 덕종(德宗) 의경세자(懿敬世子) 덕종(德宗, 1438년 ~ 1457년 9월 20일(음력 9월 2일))은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왕세자, 작가이다. 세조의 장남이자 예종의 형이며 성종·월산대군 형제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정희왕후 윤씨이다. 1455년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2년 만에 20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사후 둘째아들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으로 추존되었다. 바로 의경왕에 추존되었다가 회간왕으로 추존되고 뒤에 덕종의 묘호가 올려졌다. 정식 시호는 덕종회간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德宗懷簡宣肅恭顯溫文懿敬大王)이며 왕에 추존되기 전에는 의경세자(懿敬世子)로 불렸다. 성은 이(李), 휘는 장(暲), 초명은 숭(崇), 자는 원명(原明),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 경릉은 추존왕 덕종과 그의 비 소혜왕후 .. 2014. 11. 1.
(07대) 광릉(光陵) - 정희왕후(貞熹王后) 파평윤씨 광릉(光陵) - 정희왕후(貞熹王后) 파평윤씨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1418년 12월 8일 (음력 11월 11일) ~ 1483년 5월 6일 (음력 3월 30일))는 조선 세조의 왕비이다. 시호는 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貞熹王后)이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조선 최초로 대왕대비의 칭호를 받았고, 또한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후이기도 하다. 또한 증손자인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는 그의 오빠 윤사분의 증손녀로 종증손녀였으며, 문정왕후와 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는 남동생 윤사흔의 후손들이었다. - 정희왕후는 판중추원사 윤번의 딸로 1418년(태종 18)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 2014. 10. 25.
(07대)광릉(光陵) - 세조(世祖) 광릉(光陵) - 세조(世祖) 이유(李瑈) [수양대군(首陽大君)] - 세조(世祖, 1417년 11월 2일 (음력 9월 24일) ~ 1468년 9월 23일 (음력 9월 8일), 재위 1455년~1468년)는 조선의 제7대 임금, 이시다. 조선 왕조에서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한 임금이자, 최초로 반정을 일으켜 즉위한 군주이다. 성은 이씨(李氏), 휘는 유(瑈),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지(粹之). 생전의 존호는 승천 체도 열문 영무(承天體道烈文英武)였고, 사후 정식 시호는 세조혜장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世祖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이고, 약칭으로는 시호는 혜장대왕(惠莊大王)으로 불렸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둘째 아들로서, 문종의 동복동생이자 안평대군.. 2014. 10. 25.
(5) 현릉(顯陵) - 현덕왕후(顯德王后) 안동권씨 현릉(顯陵) - 현덕왕후(顯德王后) 안동권씨 - 현덕왕후는 1418년(태종 18)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1431년(세종 13) 14세의 나이로 세자궁에 궁녀로 들어가 세자의 후궁이 되고, 이어 내명부의 종3품 품계인 양원을 하사받았다. 1437년(세종 19)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며, 1441년(세종 23) 7월 23일 단종을 낳았다. 그러나 산후병으로 그 다음날 동궁의 자선당에서 승하하였다. 현덕왕후는 정숙한 덕과 온순한 용모로 동궁에 뽑혀 들어와 세자빈의 자리에 오르고, 단아한 성품과 효행으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총애를 받았으나 젊은 나이에 일찍 숨을 거둔 비운의 왕비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후는 생애보다 더욱 비극적이었다. 경기도 안산군에 안장된 .. 2014. 7. 20.
(5) 현릉(顯陵) - 문종(文宗) 문종(文宗) - 현릉에는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다. 이렇게 왕과 왕비를 한 능에 묻는 경우에는 다양한 양식이 존재한다. 현릉의 예처럼, 같은 능의 이름 아래 있지만,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능을 동원이강릉이라고 한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위의 언덕에 있는 능이 문종의 능이고,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 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어놓아 이 능이 동원이강임을 나타내고 있다. 현릉의 능제는 『국조오례의』의 본이 된 세종대왕의 예전 능의 제도를 따랐다. 병풍석에서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과 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무늬가 도드라진다. 고석도 4개로 줄었다. 제일 아랫단에는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서 있는 무석인이.. 2014. 7. 20.
(04대) 세종대왕 신도비 - 영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1호] 세종대왕 신도비 세종대왕 신도비는 문종 2년(1452)에 현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영릉(英陵)에 세워졌던 것을 1974년 5월에 이전해 온 것이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예종 원년(1469) 3월에 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옮기면서 신도비와 영릉 주변의 석물(石物)을 그대로 두었다. 신도비는 조선 시대에 국왕이나 종2품 이상의 고위관리만 무덤 앞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신도비는 옛 영릉 터에서 약 1km 떨어진 순조의 인릉(仁陵)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신도비의 머리부분인 이수(螭首)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며, 조각 솜씨는 매우 정교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손상이 심하다. 총 4,886자의 글자가 새겨진 이 비석은 세종대왕.. 2012. 12. 2.
(04대) 영릉(英陵) - 세종(世宗), 소헌왕후(昭憲王后) 청송심씨 [사적 제195호] 영릉(英陵) 세종(世宗), 소헌왕후(昭憲王后) 청송심씨 세종(世宗, 1397년 음력 4월 10일 (양력 5월 15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 (양력 4월 8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은 이(李), 휘는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사후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장헌대왕(莊憲大王)으로, 정식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조선 태종과 부인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종 8년(1408년) 충녕군에 봉해졌다가, 태종 12년(1412년), 형 효령군 이보와 함께 대군으로 진봉된다. 형 이제가 세자에서 폐.. 2012. 11. 27.
(06대) 사릉(思陵) - 정순왕후(定順王后) 여산송씨 [사적 제209호] 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思陵)] -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때(1698년)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은 동계만이 남아 있다. 사릉은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 2012. 11. 23.
(06대) 장릉(莊陵) - 단종(端宗) [사적 제196호] 단종(端宗)[장릉(莊陵)] - 문종(文宗)이 임종(臨終)에 앞서 단종(端宗)의 유충(幼沖)함을 염려하여 영의정 황보인(領議政 黃甫仁), 좌의정 김종서(左議政 金宗瑞) 등에 보좌(補佐)를 유언(遺言)으로 남겼으나 고명대신 등(顧命大臣 等)이 단종 원년(端宗 元年)(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피살(被殺)되고 문종(文宗)의 제(弟)이며 왕숙(王叔)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고 수양(首陽)은 동복제 안평대군(同腹弟 安平大君)이 고명대신(顧命大臣)과 불궤(不軌)를 꾀하였다 하여 강화도(江華島)로 추방(追放)하고 단종(端宗) 3년(1455년) 윤6월(閏6月) 11일 역시 동복제 금성대군(同腹弟 錦城大君)을 역모(逆謀)의 죄(罪).. 2012. 11. 22.
(10대) 연산군묘 - 연산군, 거창군부인 거창신씨 [사적 제362호]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연산군(燕山君, 1476년 음력 11월 7일 (양력 12월 2일) ~ 1506년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휘는 융(㦕)[1].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갈등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훈구파도 대량으로 숙청되어, 사림, 훈구 양측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사림파 관료들과의.. 201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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