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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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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묘335

(문신) 허암 정희량 , 숙인 강릉최씨, 숙인 안동김씨 -해주정씨- 1469(예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 철원부사 연경(延慶)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92년(성종 23)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나, 성종이 죽자 태학생(太學生)·재지유생(在地儒生)과 더불어 올린 소가 문제되어 해주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495년(연산군 1)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의 권지부정자에 임용되었다. 이듬해 김전(金詮)·신용개(申用漑)·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될 정도로 문명이 있었다. 1497년 예문관대교에 보직되어 ① 임금이 마음을 바로잡아 경연(經筵)에 근면할 것, ② 간언을 받아들일 것, ③ 현사(賢邪)를 분별할 것, ④ 대신을 경대(敬待)하며, 환관을 억제할 것, ⑤ 학교를 .. 2024. 4. 29.
(문신) 여우자 정면, 숙부인 능성구씨 -해주정씨, 주부공파- 1614~1687 자는 여강(汝强) 호는 여우자(如愚子) 별좌 도창(道昌)의 아들 생부는 도형(道亨). 164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공조좌랑 예부좌랑을 거쳐 사헌부 장령으로 승진하고, 1680년에 선원보(璿源譜)를 바로잡는데 공로가 커서 보사원종공신록(保社原從功臣錄)에 수록되었다. 1683년(숙종9) 통정대부 우승지로 재직 중 서인당(西人黨)이 노소로 분열하여 논쟁이 격심할 때 송시열 송준길의 논의에 찬동하였다. 얼마 후 경연참찬관에 임명되어 부제학을 겸직하던 중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해주 정씨 가문에 보첩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기록을 모으고 전국각지에 흩어져 사는 종인들에게 통문을 돌려 족보편집에 전력을 기우리다가 별세하여 그 아들인 계주(啓周)가 마침내 1694년 갑술보(甲戌.. 2024. 4. 29.
(도정궁 사손) 수보 이정한, 정부인 파평윤씨, 정부인 청송심씨 -전주이씨, 덕흥대원군 파- 이정한(李挺漢, 1601년 9월 25일 - 1671년 8월 30일)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종친이며, 도정궁(都正宮)의 사손(嗣孫)이다. 덕흥대원군의 4대손이자 선조의 형 하원군의 증손이다.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휘는 정한(挺漢), 초명은 대승(大承), 자는 수보(秀甫)이다. 덕흥대원군의 현손이며, 선조의 백형(伯兄)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은 증조이고, 당은군(唐恩君) 이인령(李引齡)은 조부이다. 아버지는 종실 응천도정(凝川都正) 이돈(李潡)이며, 어머니는 감사(監司) 성주인(星州人) 이욱(李稶)의 딸로 성산현부인 이씨(星山縣夫人 李氏)이다. 부인은 승지(承旨) 파평인(坡平人) 윤청(尹暒)의 딸로 증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坡平尹氏)와 선교랑(宣敎郞) 청송인(靑松人) 심욱(沈勗)의 딸로.. 2024. 4. 23.
(문신) 백암 김영, 정부인 해주정씨 - 안동김씨- 본관은 안동, 공의 휘는 영(瑛) 자는 대경(大卿), 호는 백암(白巖)이시다. 김방경의 후손이며, 부친은 김종윤이시다. 단종조에 강원도관찰사를 지내셨다. 단종복위 사건때 화를 당하셨다. 배위 정부인 해주정씨는 형조참판 정충경의 따님이시며, 영양위 정종의 누이가 되신다. 2024. 4. 22.
(문신, 좌의정) 능파 김병필[효정공], 정부인 기계유씨 -신 안동김씨- 김병필(金炳弼) 1839(헌종 5)∼1870(고종 7).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아버지는 문근(汶根)이고, 철종비 철인장황후의 동생이다. 음보로 사용(司勇)에 기용되어 1854년(철종 5) 응제(應製)에서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혜를 받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규장각대교가 되었다. 그뒤 검열·교리를 거쳐 1859년에는 홍문관부제학·대사성·이조참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듬해 호조참판, 1861년 이조참판, 1862년 대사헌을 역임하고, 1863년 다시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행호군(行護軍)이 되었으며, 철종이 죽자 존호도감옥책관(尊號都監玉冊官)을 겸하였다. 고종의 즉위로 흥선대원군이 집정하자 관계에서 물러났다가, 평소 대원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촌형 병학(炳學)이 안동김씨의 몰락 이후에.. 2024. 1. 13.
(문신) 백석 정중만, 향주 전주이씨 -해주정씨- 자는 여일(汝一) 호는 백석(白石) 필선 식(植)의 아들 14살에 현종이 인평대군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고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젊어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대권안의 여러 편액을 썼다. 1689년 사옹원 직장이 되었다가 익위사 부솔(副率)로 옮겼다. 이듬해 죄없이 철산으로 귀양 갔다가 1694년에 풀려 돌아와 위솔랑(衛率郞) 형조감(刑曹監)으로 승진되고 안음현 현감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껴 쓰고 남는 것으로 제민고(濟民庫)를 처음 만들었다. 황간현감으로 나가 다스리는 일이 가장 뛰어난지라 청도군수로 승진되었다. 이어 함열 양근 진산의 각 군수와 의금부 도사 형조정랑 충훈부도사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전라도 찰방을 역임하였다. 1728년 한성주부로 원종공신에 참여하여 아버지 필선공을 이조판서로 추증 .. 2023. 11. 29.
(문신) 의졸 남일성, 정경부인 안동권씨 -의령남씨-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덕휘(德輝), 호는 의졸(宜拙). 부친은 남식(南烒)[1589~1650]이고, 동생은 남이성(南二星)[1625~1683], 아들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다. 평소에는 어버이를 공경하는 데 힘을 썼고, 관직에 종사할 때는 절용(節用)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656년(효종 7)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고, 1659년(효종 10)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를 거쳐 진천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662년(현종 3) 전패(殿牌)를 도둑이 훔쳐간 일에 책임을 지고 파직되어 서울로 돌아왔으나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고 상평랑(常平郞)에 임명되었다. 1663년(현종 4) 통례원인의겸한성부참군(通禮院引儀兼漢城府參軍)을 제수받았다... 2023. 11. 20.
(문신) 혜지 박혜, 의인 성주여씨 -밀양박씨- 본관은 밀양 자는 혜지, 형님은 문도공 박훈이시다. 2023. 11. 13.
(문신,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 공인 완산이씨 - 한산이씨-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 수산(水山)·토정(土亭)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현 마포 용강동 부근)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아버지 이치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고,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와 수원 판관 등을 지냈다. 어머니 광산김씨는 판관을 지낸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며, 김맹권은 세종으로부터 단종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수양대군이 집권하고 단종이 죽게되자 낙향하여 여생을 은거한 인물이다. 1517년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나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 2023. 11. 10.
(공신, 용인시 향토유적) 순양부원군 상경 안몽윤, 정경부인 한산이씨 -순흥안씨, 진무공신-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세복(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 : 억측으로 일을 꾸밈)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 : 비상 시에 정궁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국정을 전담하던 임시조정)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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