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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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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군(국구)묘14

(단종대왕 국구) 여량부원군 정민공 송현수, 여흥부부인 여흥민씨 -여산송씨, 정순왕후 - 조선전기 풍저창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송복원(宋復元)이며, 단종의 장인이다. 1454년(단종 2)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로 있을 때 딸이 단종의 비로 책봉되자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고, 곧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제수받았으며 이어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조가 즉위한 뒤 윤대(輪對: 관원들이 왕과 대좌하여 응대하기도 하고 또 정사의 잘잘못을 아뢰는 일) 때에 상왕의 보필을 당부받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대간(臺諫)의 처벌요구가 있었지만 세조의 두둔으로 처벌을 면하였다. 이듬해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이 다시 .. 2022. 11. 22.
(순조의 국구, 경기 이천시) 연안부원군 충문공 풍고 김조순, 청양부부인 청송심씨 -신안동김씨- 1765(영조 41)∼1832(순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金달행(達行)이고, 아버지는 부사 김이중(金履中)이며, 어머니는 신사적(申思迪)의 딸이다. 순조의 장인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강원도·황해도·함경도 지방의 수령·찰방 중에 겸사(兼史) 1명을 두어 그 지방의 민요와 풍속을 채록해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자는 의견을 건의, 실시하였다. 1788년 규장각의 대교(待敎) 때 당시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단호히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789년 동지 겸 사은사.. 2022. 10. 9.
(광해군의 국구) 문양부원군 류자신, 봉원부부인 동래정씨 -문화류씨- 문양부원군 류자신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지언(止彦)이다. 공조판서 유잠(柳潛)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장인이다. 이담(李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태릉참봉, 돈령부직장, 내자시주부, 평강현감, 호조좌랑, 김포현령, 형조정랑, 김제군수, 장악원첨정 등을 지냈다. 1587년 셋째 딸을 왕자의 부인으로 들여보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안악현감으로 나가 해서(海西)의 가담자와 연루자들을 색출, 잡아들였으며, 이후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수행하였다. 그 후 돈령부동지사를 거쳐 외직인 성천부사,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60.. 2021. 7. 14.
(헌종의 국구) 익풍부원군 홍재룡[익헌공], 연창부부인 죽산안씨 -남양홍씨- https://blog.naver.com/madangca/220529953967 (헌종의 국구) 익풍부원군 홍재룡[익헌공], 연창부부인 죽산안씨 -남양홍씨- 조선후기 대사성, 이조참판,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현(景見). 홍주영(洪... blog.naver.com 헌종국구 익풍부원군 홍재룡 조선후기 대사성, 이조참판,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현(景見). 홍주영(洪疇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병채(洪秉寀)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홍기섭(洪耆燮)이며, 어머니는 장지면(張至冕)의 딸이다. 헌종의 국구(國舅)이다.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호군이 되고, 1839년에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선발된 뒤 홍문록(弘文錄)에.. 2016. 9. 4.
(선조의 국구) 연흥부원군 의민공 김제남, 광산부부인 광주노씨 -연안김씨- 연흥부원군 의민공 김제남 1562년(명종 17)∼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공언(恭彦). 아버지는 증영의정 오(祦)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상(常)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년 정언·헌납·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로 뽑힘으로써 돈령도정이 되고, 책비(册妃)되자 영돈령부사에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되었으나,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 2016. 8. 21.
(덕종의 장모) 남양부부인 남양홍씨 남양부부인 남양홍씨 한확 선생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있고, 부인은 멀리 떨어진 양주시 은현면에 있다. 이는 부부지간이라도 명당을 찾아 일인일묘(一人一墓)로 쓰겠다는 당시 청주한씨 가풍에 연유한다고 한다. 홍씨부인은 조선초기 양촌 권근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인 한확의 부인이며 세조와는 사돈지간으로 인수대비(성종 어머니)의 어머니다. 2016. 7. 9.
(광해군 국구) 문양부원군 지언 류자신, 봉원부부인 동래정씨 -문화류씨- 문양부원군 지언 류잠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지언(止彦)이다. 공조판서 유잠(柳潛)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장인이다. 이담(李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태릉참봉, 돈령부직장, 내자시주부, 평강현감, 호조좌랑, 김포현령, 형조정랑, 김제군수, 장악원첨정 등을 지냈다. 1587년 셋째 딸을 왕자의 부인으로 들여보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안악현감으로 나가 해서(海西)의 가담자와 연루자들을 색출, 잡아들였으며, 이후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수행하였다. 그 후 돈령부동지사를 거쳐 외직인 성천부사,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 2016. 7. 2.
(문종의 국구) 화산부원군 권전 [경혜공], 영가부부인 안동권씨, 해령부부인 해주최씨 -안동권씨- 화산부원군 경혜공 권전 (2009년 11월 22일 외후손 海州人 六友堂 鄭銘燮 참배) ?∼1441(세종 2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한성부윤 백종(伯宗)이며, 부인은 최씨이다. 경상도경력(慶尙道經歷)을 거쳐 지가산군사(知嘉山郡事)를 지내던 중, 1431년(세종 13)딸이 세자궁 승휘(世子宮承徽)로 간택되면서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이 되었다. 그뒤 세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현귀(顯貴), 1434년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거쳐 곧 통정대부에 승자되면서 첨지중추원사, 1435년 공조참의·호조참의를 지냈다. 1437년 가선대부에 승자하면서 중추원부사, 이어 공조참판과 동지돈녕부사를 지냈고, 1439년 다시 자헌대부에 초자되면서 지중추원사가 되고, 1440년 공조판서에 발탁, 곧 중.. 2014. 11. 16.
(인조의 국구) 서평부원군 한준겸 [문익공], 회산부부인 창원황씨 서평부원군 문익공 한준겸 1557 (명종 12) ~ 1627 (인조 5) 조선의 정치가. 인조(仁祖)의 장인.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시호는 문익(文翼). 본관은 청주(淸州). 생원에 장원으로, 진사에 7등으로 합격, 태릉(泰陵) 참봉이 되었다가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 사국(史局)에 뽑혀 검열(檢閱)이 되었다. 선조가 출제하여 유신(儒臣)들에게 글을 짓게 했을 때 수위로 뽑혀 표피(豹皮)를 상으로 받았으며, 금천(衿川) 현감으로 재직 중 정여립(鄭汝立)의 반란이 일어나자, 앞서 정여립의 사위 이진길(李震吉)을 천거했었던 관계로 수금되었다. 1592년 예조 정랑을 거쳐 원주 목사(原州牧使)ㆍ지평(持平) 등을 거쳐 1597년(선조 30) 승지(承旨)에 이르러 왜병이 또다시 쳐들.. 2012. 10. 9.
(숙종의 장모) 풍창부부인 풍양조씨 풍창부부인 풍양조씨 방형의 분묘 앞 좌측에는 묘비, 중앙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 그리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각기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영조 17년(1741)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의 음기는 외손인 이재짓고, 글씨는 해서체로서 손자 민우수가 썼다. 묘비는 화강암의 옥개석과 장방형의 대석을 갖추 었고, 오석의 비신은 높이 178㎝, 폭 78㎝, 두께 28.5㎝의 규모이다. 풍창부부인 조씨(1659-1741)는 조선 숙종비 (인현왕후)의 친정어머니이며,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내 이다. 본관은 풍양이다. 효종 10년(1659) 성균관 생원 조귀중과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나 18세인 숙종 2년(1676) 민유중에게 출가했고, 딸이 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자 외명부 정 1품인 부부인의 작위를 받았다.. 201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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