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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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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14

(문신,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 공인 완산이씨 - 한산이씨-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 수산(水山)·토정(土亭)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현 마포 용강동 부근)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아버지 이치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고,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와 수원 판관 등을 지냈다. 어머니 광산김씨는 판관을 지낸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며, 김맹권은 세종으로부터 단종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수양대군이 집권하고 단종이 죽게되자 낙향하여 여생을 은거한 인물이다. 1517년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나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 2023. 11. 10.
(공신, 용인시 향토유적) 순양부원군 상경 안몽윤, 정경부인 한산이씨 -순흥안씨, 진무공신-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세복(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 : 억측으로 일을 꾸밈)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 : 비상 시에 정궁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국정을 전담하던 임시조정)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 2023. 10. 23.
(문신) 졸탄 충간공 김권, 정경부인 한산이씨 -청풍김씨- 1549 (명종 4) ~ 1622 (광해군 14)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시호는 충간(忠簡), 덕무(德懋)의 아들. 성 혼(成 渾)에게 학 문을 배우고,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헌납(獻納).사복시 첨정 (司僕寺僉正) 등을 거쳐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으며, 1615년(광해군 7) 사 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인조 때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2023. 10. 6.
(문신) 청백리 문청공 이병태, 정부인 반남박씨, 정부인 진주류씨 -한산이씨 1688(숙종 14)∼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아버지는 진사 이협(李浹)이다. 1715년(숙종 41) 진사시에 합격하고, 사릉참봉(思陵參奉)·평시서봉사·내자시직장을 역임하였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를 받고, 누진 끝에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수찬에 올랐다. 1727년(영조 3) 예조참의로 있을 때 할아버지가 임진왜란으로 죽었기에, 의당 참의로서 하여야 할 왜서회답(倭書回答)의 예를 회피하기 위하여 사직하였다. 그 뒤 다시 호조참의가 되어, 노론계열로 탕평론을 배척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1730년 경상도관찰사에 보직되었으나 거절하고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해 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거절하며, 탕평책을.. 2023. 4. 21.
(문신, 경기 광명시) 감역공 강문벽, 유인 한산이씨 -금천강씨- 본관은 금천, 벼슬은 음사 감역 이시다. 2022. 8. 20.
(문신, 경기 안산시) 두호 정시윤, 숙부인 한산이씨 -나주정(丁)씨- 1646(인조 24)∼1713(숙종 3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나. 자는 자우(子雨), 호는 두호(斗湖). 윤복(胤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호선(好善)이고, 아버지는 교리 언벽(彦璧)이며, 어머니는 목취선(睦取善)의 딸이다.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음보(蔭補)로 현감을 지내고, 1690년(숙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올랐다. 그 뒤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헌납(獻納)·수찬(修撰) 등 삼사의 청직(淸職)만을 두루 거쳤다. 1694년 홍문관부교리로 있을 때 남인과 소론간의 당쟁이 격화, 남인일파가 몰락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한 갑술옥사가 발생하자 남인으로 지목되어 삭직되었다. 1698년 세자시강원필선으로 복직.. 2022. 8. 11.
(무신, 친일반민족행위자) 공집 민대식, 정부인 한산이씨, 숙부인 신창맹씨 -여흥민씨- 1882~1951 자는 공집, 본과는 여흥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군인 유명민영휘의 소생 중 맏아들로 한성부 출신이다. 본래 대한제국 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03년 대한제국 육군 정위 전역 후 1920년 민영휘의 뒤를 이어 은행업에 뛰어든 뒤 조선 실업계의 거물로 활동했다. 민대식은 1931년에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동일은행을 창설하고 은행장격인 두취가 되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재계의 동향을 살펴 실무를 통제하는 일은 그의 독무대"였으며 "재계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가 나서서 조정역을 맡아 힘쓰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여 민대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조선.. 2022. 4. 4.
(문신) 충익공 이천 홍중보, 정경부인 한산이씨 -남양홍씨- 충익공 이천 홍중보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백(遠伯), 호는 이천(梨川).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 명구(命耉)이며 어머니는 신감(申鑑)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고 1645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했다. 인조대에 정언·성산현감을 지냈고, 1650년(효종 1)에 수찬으로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효종대에 수원부사·도승지·대사간·대사헌·병조참판·예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현종대에는 지경연사·호조판서·병조판서·우참찬·판의금부사·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영의정 명하(命夏)의 조카로 효종과 현종의 신임을 받았다. 2016. 8. 5.
(문신) 국일재 노공필, 정경부인 한산이씨 -교하노씨- 국일재 노공필 1445(세종 27)∼1516(중종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희량(希亮), 호는 국일재(菊逸齋). 할아버지는 동지돈영부사 물재(物載)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사신(思愼)이며, 어머니는 첨지(僉知) 경유근(慶由謹)의 딸이다. 경기도 교하현(交河縣 : 지금의 파주)출신이다. 1462년(세조 8)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사직서영(社稷署令)을 지낸 뒤 1466년 춘시문과에 2등으로 급제, 성균관직강이 되고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부제학을 거쳐 병조·이조·예조의 참의와 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1483년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1489년에 공조판서가 된 데 이어 6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498년(연산.. 2016. 6. 22.
(문신) 수몽 정엽[문숙공], 정경부인 한산이씨 -초계정씨- 문숙공 수몽 정엽 1563(명종 18)∼1625(인조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몽(守夢). 희년(熙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璇)이고, 아버지는 진사 유성(惟誠)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증찬성 언태(彦台)의 딸이다. 3세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4세 때 벌써 시를 지어 이이(李珥)와 정유길(鄭惟吉)로부터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지함(李之菡)의 주선으로 송익필(宋翼弼)에게서 수업하고, 성혼(成渾)·이이의 문하에 출입하여 당시의 명류들과 교유하였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을 거쳐 홍문관의 문한직(文翰職)을 맡았다. 1587년 감찰·형조좌랑이 되었으며, 1593년 황주판관으로 왜군을 격퇴, 그.. 2015.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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