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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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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28

(독립운동가, 대한민국군인) 육군소장 권준 -안동김씨-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였고, 조선의용대 비서장, 임시정부 내무부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육군대령,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원명은 권중환(權重煥), 가명은 장수화(張樹華), 호는 백인(百忍) 또는 양무(揚武). 경상북도상주 출신.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길림에서 의열단 창단에 참여하고, 1921년 북경에서 동지들과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하고, 이후 의열단의 종로경찰서·총독부·동양척식회사에의 투탄사건과 동경 니쥬바시투탄의거[二重橋投彈義擧] 때 자금조달의 활동을 하다가 국내에서 잡혀 일시 옥고를 겪은 뒤 다시 상해로 망명하였다. 1.. 2024. 3. 3.
(대한광복군, 독립운동가, 외교관) 박영 -밀양박씨- 관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외교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건국포장)수여. 1921년 12월 20일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1944년 주오대학 재학 중 학병에 끌려가 소주에서 간부 후보생으로 훈련 받던 중 김영남, 류재영, 성동준, 최용덕, 정병훈, 김봉옥과 탈출하였다. 탈출 후 중국군 충의구국군사령부에 들어가 일본군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였고, 일본군 포로심문 및 통역관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의 탈출 사실은 중국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해방 후 귀국하여 1954년 고등전형시험 외무과에 합격하였고, 국제연합대표부 근무를 시작으로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외무부 통상경제조사과장, 홍콩, 베트남 공화국, 뉴질랜드 참사관을 거쳐 1973년 주 뉴질랜드 대리 대사, 1974년 주 로스엔젤.. 2024. 2. 4.
(애국지사) 박승유 -대전국립현충원- 서울 종로(鍾路) 사람이다. 1944년 10월에 절강성(浙江省) 의오현(義烏縣)에 주둔 중인 일본군 횡정(橫井)부대에 배속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무석(無錫), 무호(蕪湖), 남경(南京)지역에서 초모공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음악에 소질이 있던 터라서 야전 방송대에 파견되어 같은 동포 사병들에 대한 반정(反正)권고와 염전(厭戰)가곡 등의 방송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2023. 9. 11.
(독립운동가) 김애순 -대전현충원, 김규식 배위-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간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교육자. 황해도 장연 출신. 아버지는 김성섬(金聖蟾), 어머니는 안성은(安聖恩)이다. 송천학교를 마치고 상경,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 초량소학교 교사로 부임,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역사와 지리를 몰래 가르쳤다. 이 일로 여러 번 단속을 당하고, 붙잡힐 기미가 보이자 1911년 만주 통화현(通化縣)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남경에서 중화명덕여자학원(中華明德女子學院)을 다녔다. 1919년 1월에 김규식(金奎植)과 결혼하고 상해로 이주, 김규식·신석우(申錫雨)·선우혁(鮮于爀)·장덕수(張德秀)·여운형(呂運亨) 등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조직하여 이사로 취임, 국내와 만주를 내왕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 2023. 9. 8.
(애국지사) 민영숙[민옥금] -여흥민씨- 민영숙선생은 1919년 3월 10일경 충남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 양대리(良垈里)에 소재한 사립광명여학교(私立光明女學校0에 재학 중 학우인 한이순(韓二順)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태극기를 준비하여 3월 20일 10시경 동교학생 80여명을 규합하여 양대리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하고, 이어 입장면 장터로 진출하여 장터에 모인 300여 명의 군중과 같이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피체됨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0년 2월 7일 가출옥함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되었다. 2023. 9. 2.
(독립운동가) 정주하 (정주화) -해주정씨, 종파(삼옥공파)-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방화했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2023. 8. 31.
(독립운동가) 농운 정규섭 -해주정씨, 농포 정문부 13대종손- 1928년 5월 13일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 귀곡동(현 진주시 귀곡동)에서 아버지 정용근(鄭用根, 1906. 10. 3 ~ 1941. 11. 14)과 어머니 진주 하씨 하차임(河且任, 1906. 1. 29 ~ 1973. 4. 22)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진주공립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친구 하익봉, 강필진, 박노근, 김상훈(金相勳) 등과 함께 독서동아리인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이 동아리를 통해 한국사를 공부, 토론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로, 특히 박노근의 아버지 박기동(朴琦東, 1910. 4. 2 ~ ?)와 하익봉의 숙부가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졸업 후 모두 중국으로 .. 2023. 8. 25.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망우리공원묘지- https://madangca.tistory.com/260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초장지 -망우리공원묘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초장지 madangca.tistory.com https://madangca.tistory.com/682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초장지 -망우리공원묘지- madangca.tistory.com 2023. 3. 2.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초장지 -망우리공원묘지- 2023. 3. 2.
(독립운동가) 어갑수 독립운동가 어갑수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08년 교동(校洞)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중퇴했다. 1909년 4월부터 1911년 3월까지 휘문의숙 예비과에서 수학했다. 그해 4월부터 1913년 3월까지 서울 중앙학교에서 수학했다. 같은 해 4월 경성전수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3월 졸업했다. 이후 포천 청성학교(靑城學校) 교원으로 근무했다. 1915년 3월 청성학교를 그만두고 1916년 5월 철원 사립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7월 퇴직했다. 1922년 2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시대일보』 기자가 되었다. 1924년 11월 화요회에 가입했다. 1926년 3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경성부 .. 201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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