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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및 호국영령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군인) 육군소장 권준 -안동김씨-

by 보현당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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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였고, 조선의용대 비서장, 임시정부 내무부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육군대령, 수도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 관료 ·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원명은 권중환(權重煥), 가명은 장수화(張樹華), 호는 백인(百忍) 또는 양무(揚武). 경상북도상주 출신.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길림에서 의열단 창단에 참여하고, 1921년 북경에서 동지들과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하고, 이후 의열단의 종로경찰서·총독부·동양척식회사에의 투탄사건과 동경 니쥬바시투탄의거[二重橋投彈義擧] 때 자금조달의 활동을 하다가 국내에서 잡혀 일시 옥고를 겪은 뒤 다시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4년 상해에서 열린 중국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관인으로 참석, 손문(孫文)의 추천장을 받아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들어가 군사학을 전공, 졸업 후에는 손문의 북벌전쟁에 참여하였다. 1932년난징[南京]에서 국민당의 원조를 받아 한국인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간부를 양성하였다. 1937년 조선의용대 비서장으로서 항일무한방위전(抗日武漢防衛戰)에 참가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의 광복군에 합류할 때 임시정부에 들어가 1944년에 내무부차장이 되었다. 광복 직후 무한지구 교포선무단장과 광복군 제5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46년 12월 귀국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육군대령으로 특채되어 제106여단장·초대 수도경비사령관·103사단장·서부지구경비사령관 등을 지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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