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청주한씨17

(효자) 희주 송지겸, 부인 청주한씨 -야성송씨, 의원- 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야성. 자는 희주(希周). 양지현(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여 천성이 지효하였다. 부친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조석으로 문안하고 겨울에는 행여 방이 찰세라 군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였으며, 하인을 시키지 않고 반드시 손수 하였다. 부친의 환우 중에는 험한 고개를 넘어 20여 리나 되는 다른 동네에 피접처를 정한 후 시탕 간병하였는데 늦은 밤에는 범이 나타나 길을 밝혀 주었다고 한다. 친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거상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소식하였다.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의술로 명의라는 이름을 남겼다. 언젠가 궁궐에 초치되어 왕의 진맥을 보고 곧 퇴궐하여 급히 탕제를 지어서 입궐하였더니 임금께서 이미 붕어하셨기로 왕의 환우를 치.. 2023. 10. 9.
(문신, 애국지사) 명암 최익현, 정부인 청주한씨 -경주최씨, 항일운동가- 조선후기 장령, 돈녕부도정, 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항일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 경기도 포천 출신. 최대(崔岱)의 아들이다. 6세 때 입학해 9세 때 김기현(金琦鉉)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다. 14세 때 경기도 양근(楊根) 벽계(蘗溪)에 은퇴한 성리학의 거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격몽요결(擊蒙要訣)』·『대학장구(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 등을 통해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항로의 ‘애군여부 우국여가(愛君如父 憂國如家)’의 정신, 즉 애국과 호국의 정신을 배웠다. 1855년(철종 6) 명경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던 이후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신창현감(新昌縣監)·성.. 2023. 2. 24.
(문신, 경기 여주시) 구암 한백겸, 정경부인 능성구씨, 정경부인 함창김씨 -청주한씨- 조선의 학자.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庵). 본관은 청주(淸州). 어려서 배움에 힘썼으며, 민순(閔純)에게 《소학》과 《근사록(近思錄)》을 배웠고 계속하여 의리(義理)에 관한 연구에 힘써 육경논맹(六經論孟)과 염락관민(廉洛關閩)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86년(선조 19) 천거에 의하여 중부 참봉(中部參奉)이 되고 곧이어 경기전(慶基殿) 참봉을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 때 연좌되어 귀양갔다가 임진왜란 때에 석방되어, 적소에서 적군에게 아부하여 난을 선동한 자들을 참살한 공으로 내자직장(內資直長)이 되었다가 여러 내외직을 거친 다음 호조 참의(戶曹參議)가 되었다. 선조가 죽자 대신들은 백겸이 예(禮)에 밝다 하여 빈전(殯殿)의 상례(喪禮)를 맡겼다. [네이버 지.. 2022. 11. 24.
(유시 한흥일 배위) 정경부인 전주이씨 https://madangca.tistory.com/entry/%EB%AC%B8%EC%8B%A0-%EC%9A%B0%EC%9D%98%EC%A0%95-%EC%9C%A0%EC%8B%9C-%EC%A0%95%EC%98%A8%EA%B3%B5-%ED%95%9C%ED%9D%A5%EC%9D%BC-%EC%A0%95%EA%B2%BD%EB%B6%80%EC%9D%B8-%EB%8F%99%EB%B3%B5%EC%98%A4%EC%94%A8-%EC%B2%AD%EC%A3%BC%ED%95%9C%EC%94%A8 (문신, 우의정) 유시 정온공 한흥일, 정경부인 동복오씨 -청주한씨- 조선시대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진보(振甫), 호는 유시(柳市). 한여필(韓汝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효.. 2022. 11. 23.
(유시 한흥일 배위) 정부인 전주이씨 정부인 전주이씨는 효령대군의 후손이신 이진현의 따남이시다. 부인 전주이씨께서는 병자호란당시 강도함락때 순절하셨다. https://madangca.tistory.com/entry/%EB%AC%B8%EC%8B%A0-%EC%9A%B0%EC%9D%98%EC%A0%95-%EC%9C%A0%EC%8B%9C-%EC%A0%95%EC%98%A8%EA%B3%B5-%ED%95%9C%ED%9D%A5%EC%9D%BC-%EC%A0%95%EA%B2%BD%EB%B6%80%EC%9D%B8-%EB%8F%99%EB%B3%B5%EC%98%A4%EC%94%A8-%EC%B2%AD%EC%A3%BC%ED%95%9C%EC%94%A8 (문신, 우의정) 유시 정온공 한흥일, 정경부인 동복오씨 -청주한씨- 조선시대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 2022. 11. 21.
(문신, 우의정) 유시 정온공 한흥일, 정경부인 동복오씨 -청주한씨- 조선시대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진보(振甫), 호는 유시(柳市). 한여필(韓汝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아버지는 실학의 선구자 한백겸(韓百謙)이며, 어머니는 교위(校尉) 김정준(金廷俊)의 딸이다. 별좌(別坐)로서 1624년(인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고, 1628년에 수찬을 거쳐 1630년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1633년 이조좌랑, 이듬해에 전라도양전사가 되었다. 1636년 사간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신주와 빈궁들을 강화도로 호위하였고, 좌부승지·전부부윤을 역임하였다. 1637년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배종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우승지를 거쳐, 1.. 2022. 11. 21.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경기 양주시) 청성부원군 질경공 한치형, 정경부인 전주이씨, 정경부인 단양우씨 -청주한씨- 조선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통지(通之). 한영(韓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영정(韓永矴)이고, 아버지는 한절(韓石+失)이며, 어머니는 중군총제(中軍摠制) 조서(趙敍)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18세로 군직에 음보(蔭補)된 뒤 감찰·장령·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을 거쳐, 1467년(세조 13)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좌부승지에 오르고 이어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그 해 12월 이조참판에 특승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 직후에 함길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다시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성종이 즉위한 뒤,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으며, 형.. 2022. 6. 27.
(세조-창원군) 덕진군 이활, 평산군부인 평산신씨, 청원군부인 청주한씨 -전주이씨- 덕진군 이활 덕진군(德津君) [德津君(중종 16)] 휘는 활(?), 자는 원지(源之). 창원군의 계자(繼子) 생부는 덕원군이다. 덕진군은 연산군이 폭정과 음학을 일삼자 여러 차례 간했으나 듣지 않자 1506년(중종 1) 종실 중 운수군(雲水君) 효성(孝誠)과 상의하여 반정을 일으켜 성공,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어 종1품 가선대부가 되었다. 덕진군은 기상이 웅대하고 의지가 굳었으며 효심과 우애가 깊고 학문을 좋아하여 세칭 문장이라 일컬어졌다. 1521년(중종 16) 6월 9일 종기를 앓다가 향년 53세로 별세하였다. 배위 평산군부인 평산신씨는 억년(億年)의 딸로 1녀를 두어 성율(成慄)에게 출가시켰고, 배위 청원군부인 청주한씨는 충례(忠禮)의 딸로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대원정(大原正)에 .. 2016. 8. 21.
(문신) 청양군 손암 심의겸, 정부인 청주한씨 -청송심씨- 청양군 손암 심의겸 1535년(중종 30)∼1587년(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고, 아버지는 심강(沈鋼)이며,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청요직에 임명되었다. 1563년 사림들이 이량(李樑)으로부터 화를 입게 되자 외숙인 그를 탄핵하며 권세와 간계를 배척하는 등 사림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힘썼으나 도리어 왕의 외척으로 일을 꾸민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1564년 지평·검상·사인을 거쳐 이듬해 사간·부응교 등을 역임하고, 15.. 2016. 2. 2.
(09) 순릉(順陵) - 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청주한씨 순릉(順陵) 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청주한씨 공혜왕후는 1456년(세조 2) 10월 11일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막내딸로 연화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공릉에 묻힌 장순왕후와는 친자매 사이였다. 1467년(세조 13) 1월 12일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왔으나 예의 바르고 효성이 지극해 세조비 정희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5년 만인 1474년(성종 5) 4월 1일 열아홉의 나이로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승하하였다. “죽고 사는 데는 천명이 있으니, 세 왕후를 모시고 끝내 효도를 다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을 한탄할 뿐이다”라는 마지.. 2015. 5. 31.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