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통지(通之). 한영(韓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영정(韓永矴)이고, 아버지는 한절(韓石+失)이며, 어머니는 중군총제(中軍摠制) 조서(趙敍)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18세로 군직에 음보(蔭補)된 뒤 감찰·장령·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을 거쳐, 1467년(세조 13)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좌부승지에 오르고 이어 우승지·좌승지를 거쳐, 그 해 12월 이조참판에 특승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 직후에 함길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다시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성종이 즉위한 뒤,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으며, 형조판서에 승진되었다. 그 뒤 개성부유수·경기도관찰사·한성부판윤, 호조와 병조의 판서를 거쳐, 1481년 좌참찬에 올랐다. 연산군이 즉위한 직후 좌찬성으로 대사헌을 겸하였고, 우의정을 역임한 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에는 좌의정으로서 유자광(柳子光)·노사신(盧思愼) 등과 함께 사화에 깊이 관여하였다. 1500년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죽은 뒤인 1504년 갑자사화 때, 일찍이 그가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尹妃)를 폐출시킨 모의에 가담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부관참시되고 일가가 몰살되었으며, 중종반정 후 신원되었다. 그의 고모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비(妃)가 된 관계로 성종 때에 주청사(奏請使)·성절사(聖節使)·사은사(謝恩使) 등으로 여러 차례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황제의 은총을 받았다. 시호는 질경(質景)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치형 [韓致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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