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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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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옹주)묘13

(영조, 충북 음성군) 화길옹주, 능성위 구민화 -능성구씨- 1752년(영조 28)∼1772년(영조 48).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숙의문씨(淑儀文氏)이다.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에게 하가하였다. 구민화는 호군 구현겸(具顯謙)의 아들이다. 1772년(영조 48) 12월 18일에 죽는다. 소생은 1남 2녀가 있으며 구명희(具命喜)와 2녀는 김이초(金履初)와 윤영명(尹永明)에게 시집갔다. 2022. 11. 30.
(세종, 경기 남양주시) 정안옹주, 청성위 안도공 심안의 -청송심씨- 1438년(세종 20)∼1461년(세조 7). 세종(世宗)의 딸로 모친은 숙원이씨(淑媛李氏)이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에게 하가하였다. 심안의는 관찰사 심선(沈璿)의 아들이다. 선조의 딸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동명이인이다. 1461년 정안옹주가 사망하자 세조는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쌀‧콩 아울러 1백 석과 종이 2백 권, 백저포(白苧布)‧면포(綿布) 각가 10필, 베[布] 60필을 부의(賻儀)로 주었다. 1438(세종 20)∼1476(성종 7). 조선 전기의 부마(駙馬). 본관은 청송(靑松). 아버지는 관찰사 심선(沈璿)이다. 세종의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의 남편으로 순의청성위(順義靑城尉)에 봉하여졌다.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책봉되고 황주선위사(黃州宣慰.. 2022. 6. 15.
(선조) 정근옹주, 일선위 김극빈 -선산김씨- 정근옹주, 일선위 김극빈 정근옹주(貞謹翁主, ?~1613)는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아홉번째 딸로 선조와 그의 후궁인 정빈(靜嬪) 민씨(閔氏)의 소생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김이원(金履元)의 아들인 일선위(一善尉) 김극빈(金克?)에게 출가하였다. 묘는 남편의 묘와 동-서로 나란히 하여 동향하여 있는데 우선 상부의 묘는 장방형 화강암 석재 9매를 이용하여 호석을 둘렀다. 아래의 묘도 장방형 화감암 8매를 원형으로 둘렀다. 묘 우측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비좌가 있다. 묘 중앙에는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씩 있다. 2019. 3. 19.
(중종) 혜순옹주, 광천위 김헌윤 -광산김씨- 혜순옹주, 광천위 김헌윤 혜순옹주(惠順翁主, 1512년 2월 12일 ~ 1583년)은 조선 중기의 옹주로,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의 서장녀이며, 어머니는 경빈 박씨(敬嬪 朴氏, ? ~1533)이다. 1512년 2월 12일(음력 1월 25일)(木)에 경빈박씨의 1남 2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1522년(중종 17) 김헌윤의 아들 광천위(光川尉) 김인경(金仁慶)에게 출가하였다. 1527년 김안로와 그 아들 김희 등의 조작으로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나 혜순옹주의 계집종들이 추국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인 경빈 박씨와 오라비 복성군은 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1533년에는 남편 김인경 또한 같은 사건에 연좌되어 변방으로 장배(杖配)되었으며, 혜순옹주도 서인(庶人.. 2016. 8. 5.
(고종) 덕혜옹주 덕혜옹주 고종(高宗)의 딸이며 어머니는 귀인양씨(貴人梁氏)이다. 1919년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하였다. 9세가 되던 1921년 4월에 경성일출심상소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수학하였다. 그러나 1925년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의 학습원을 마친 뒤,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31년 5월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로 결혼하여 딸 마사에[正惠]를 두었다. 그러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후 계속 병상생활을 하다가 1953년 다케유키와 강제로 이혼당한다. 옹주는 1962년 1월 26일이 되어서야 귀국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2016. 7. 21.
(성종) 정숙옹주, 영평위 윤섭 -파평윤씨- 정숙옹주, 영평위 윤섭 1492년(성종 23)∼미상. 성종(成宗)의 서녀로 어머니는 숙의홍씨(淑儀洪氏)이다. 파평윤씨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에게 하가하였다. 그러나 자식은 낳지 못하였다. 윤섭은 윤승류의 아들이다. 2016. 7. 7.
(선조) 정안옹주, 금양위 분서 박미 -반남박씨- 정안옹주, 금양위 분서 박미 자는 중연(仲淵), 호는 분서(汾西). 참찬 동량(東亮)의 아들이며, 선조의 부마이다.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으로,1603년(선조 36)선조의 다섯째딸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에 봉하여졌다. 1605년 친공신적장자(親功臣嫡長子)의 자격으로 2계(二階)를 초자(超資)받아 숭덕대부(崇德大夫)에 올랐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13년(광해군 5)폐모의 논의가 일어났을 때, 아버지가 국구인 김제남(金悌男)과 친교가 깊다 하여 화를 입었다. 자신도 폐모론의 정청(政廳)에 불참하였다 하여 김류(金#유15) 등과 함께 10사(十邪)로 불리면서 관작을 삭탈당하였다. 인조반정 후 1625년(인조 3) 회맹공신(會盟功臣)책봉 때 구공신적장자(舊功臣嫡長子)로.. 2016. 7. 7.
(선조) 정정옹주. 진안위 류적 -진주류씨- 정정옹주, 진안위 류적 선조의 후궁 정빈(貞嬪) 홍씨(洪氏)의 소생으로 선조의 아홉번째 딸이다. 선조 37년(1604) 정정 옹주로 봉해지고 광해군 2년 진안위(晋安尉) 류적에게 출가하였다.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도에서 증살(蒸殺)되었고 이어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모하려 하자 지아비와 더불어 이를 반대하였다. 후에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인조는 광해군 치하에서 진안위가 정의롭게 처신하였다 하여 통헌대부에 추증하고 정정 옹주에게도 두터운 예로 대우하였다. 후사가 없어 시동생 영(潁)의 아들 명전(命全)을 양자로 삼았으나 명전도 문과에 급제한지 2년만에 요절하였다. 이후 2년만에 옹주도 타계하니 현종은 정사를 폐하고 장례비용을 후사하였으며 스스로.. 2016. 7. 3.
(정조) 숙선옹주, 영명위 홍현주 [효간공] -풍산홍씨- 숙선옹주 효간공 영명위 홍현주 -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년 3월 1일 ~ 1836년 6월 7일)는 조선의 왕족이다.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와 수빈 박씨(綏嬪 朴氏, 1770~1822)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로,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동복누이이다. 1803년(순조 3), 숙선옹주의 혼례를 위해 금혼령이 내려지고 이듬해 희정당에서 숙선옹주의 부마 초간택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중희당(重熙堂)에서 재간택이 이루어지고 전 정랑(正郞) 홍인모(洪仁謨)의 아들이자 홍석주의 동생인 홍현주가 부마로 뽑혔다. 1804년 5월 27일 숙선옹주는 12세의 나이에 홍현주에게 하가하였다. 숙선옹주는 순조의 유일한 동복누이로 순조와는 사이가 좋았는데 .. 2016. 3. 20.
(정조) 숙선옹주, 영명위 홍현주 [효간공] -풍산홍씨- 숙선옹주 효간공 영명위 홍현주 -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년 ~ 1836년)는 조선의 왕족이다. 조선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이다. 1803년(순조 3), 숙선옹주의 혼례를 위해 금혼령이 내려지고 이듬해 희정당(熙政堂)에서 숙선옹주의 부마 초간택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중희당(重熙堂)에서 재간택이 이루어지고 전 정랑(正郞) 홍인모(洪仁謨)의 아들이자 홍석주(洪奭周)의 동생인 홍현주(洪顯周)가 부마로 뽑혔다. 1804년 5월 27일 숙선옹주는 12세의 나이에 홍현주(洪顯周)에게 하가하였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순조와는 사이가 좋아 순조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숙선옹주의 집에 임하기도 했다. - 홍현주(洪顯周, 1793년 - 186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서.. 2016.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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