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묘역자료실5

(고총) 무수동 고총 [무수골 고총, 승지골 고총, 공세리 고총] 2021. 7. 4.
(정발 애첩, 노비) 애첩 애향, 충비 용월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에 상륙한 왜병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그도 전사하였다. 이 때 첩 애향(愛香)은 자결하였고, 노(奴) 용월(龍月)도 전사하였다. 2016. 7. 9.
해주정씨 8대봉군 해주정씨 8대봉군 휘 군호 벼슬 묘소 5대 정종 (鄭悰) 영양부원군 문종대왕 사위 영양위 (배 경혜공주) 대자동 6대 정미수 (鄭眉壽) 해평부원군 우찬성 사릉 7대 정승휴 (鄭承休) 해림군 충훈부도사 사릉 8대 정원희 (鄭元禧) 해령군 사헌부감찰 사릉 9대 정흠 (鄭欽) 해성군 돈령부판관 사릉 10대 정효준 (鄭孝俊) 해풍군 돈령부지사 사릉 11대 정식 (鄭植) 해원군 남양부사 여주 12대 정중휘 (鄭重徽) 해흥군 의금부지사 사릉 - 성명을 클릭하시면 묘소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틀린 경우 말씀하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사릉복릉(復陵)으로 인하여, 해원군묘소는 서초 백석동에 이장되었다가 다시 여주로 이장하였다. - 영양위 정종묘소와 부친되시는 형조참판 정충경묘소가 실전이 되었는데 왜 실전이 되었.. 2012. 9. 15.
조선최고의 벼루 장인 -석치 정철조- 오늘날도 그렇지만 벼루 깎는 장인은 좀체 그 이름을 남기는 법이 없다. 그런데 이 벼루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인물이 있다. 그것도 벼루를 전문으로 만드는 기술자도 아닌, 문과에 급제해서 정언 벼슬까지 지낸 양반 사대부가 말이다. 그의 이름은 정철조다. 당시 안목 있다는 사람으로 그가 깎은 벼루 하나쯤 소장하지 못하면 부끄럽게 여겼을 정도라는 그의 벼루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정철조와 그의 벼루를 소개한다. 벼루에 미친 사람 정철조(鄭喆祚, 1730~1781)는 본관이 해주로 자는 성백誠伯, 호가 석치石癡다. 45세 나던 1774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벼슬은 정언正言을 지냈다. 아버지 정운유(鄭運維, 1704~1772) 역시 문과에 급제하고 공조판서까지 지냈던 인물이었다. 정철조는 그의 장남이었다... 2012. 9. 13.
벼루에 미친 사람 -석치 정철조- 벼루에 미친 사람 "석치 정철조" 석치 정철조 필자인 저의 8대 조부님 이십니다. 오늘은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004년도 "시간여행 역사 속으로" 프로그램에서 저의 8대 조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적이 있어 소개 하고 자 합니다. 병세재안록에 벼루에 미친 사람이있으니 그 이름은 정철조 호는 석치(石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석치(石痴) 뜻을 풀의 하자면 돌이 미친 사람이란 뜻입니다. 왜 그런 호를 사용하셨는지 그분이 얼마나 괴짜 셨는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석치 할아버지는 차고 다니는 칼만 가지고 벼루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으니, 석치라는 호가 철조할아버지와 잘 어울립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정언이라는 벼슬을 하셨지만, 기록을 보아 벼슬에 뜻이 있지 .. 2012. 9. 12.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