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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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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군묘41

(관직) 순창부원군 장의공 김여물, 정경부인 함양박씨 -순천김씨- 본관은 순천.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구子)·외암(畏菴). 찰방 훈(壎)의 아들이고, 영의정 유(瑬)의 아버지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했다. 병조낭관을 지내고 충주도사(忠州都事)를 거쳐, 1591년 의주목사로 있을 때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순변사 신립(申砬)이 그의 무략과 재능을 알고 자기의 종사관으로 임명해줄 것을 왕에게 간청하여, 함께 충주 방어에 나섰다. 신립이 새재(鳥嶺) 방어의 어려움을 들어 충주로 나아가 배수의 진을 치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새재를 점령하여 지키든지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역습하자고 주장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충주의 달천(㺚川)을 등지고 배수진을 쳐 탄금대(彈琴臺.. 2023. 3. 26.
(공신) 길창부원군 소한당 익평공 권람, 영원군부인 고성이씨 -안동권씨, 충북 음성군- 조선시대의 문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시호는 익평(翼平).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한명회와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깊은 교우관계를 가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감찰(監察)을 거쳐 이듬해 교리(校理)로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함께 편찬하던 수양대군(首陽大君;세조)과 가까워졌다. 단종 즉위 후 한명회의 원모(遠謀)의 뜻을 같이 하고 수양대군에게 접근, 그의 참모가 된 뒤, 양정(楊汀)·홍달손(洪達孫) 등 무장(武將)을 포섭했다. 53년 (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에 특진, 55년 세조 즉위와 함께 이조참판(吏曹參判)에 발탁되었다. 이어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으로 예문관대제학(.. 2023. 1. 27.
(공신) 길창부원군 문충공 양촌 권근, 숙경택주 경주이씨 -안동권씨- 고려말 조선초 학자·문신. 양촌(陽村) 권근의 필적.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 1368년 (고려 공민왕 17)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고 69년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이 되고, 우왕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75년 (우왕 1)에는 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였으며, 공양왕이 즉위하자 창왕의 외조부 이림(李琳) 일파로 몰려 극형을 받게 되었으나 이성계(李成桂)의 도움으로 모면하였다. 90년 (공양왕 2) 윤이·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는데, 이때 《입학도설(入學圖說)》을.. 2023. 1. 25.
(공신, 충북 음성군) 길청부원군 양촌 문충공 권근, 숙경택주 경주이씨 -안동권씨,좌명공신- 조선전기 중추원사, 정당문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 권보(權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 아버지는 검교정승 권희(權僖)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해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했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즉위하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 원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와 화친함)을 주장했으며,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성균관대사성·지신사(知申事) 등을 거쳐, 1388년(창왕 즉위)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이은(李垠) 등을 뽑았다. 이듬해 첨서밀직사사(簽書.. 2022. 12. 10.
(관직, 경기 고양시) 풍창부원군 습지 홍난상, 계배 정경부인 능성구씨 -풍산홍씨- 본관은 풍산, 자 중서, 호는 습지 이다. 홍이상의 동생이다. 벼슬은 형조좌랑을 지내시고,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풍창부원군이시다. 2022. 12. 4.
(단종대왕 국구) 여량부원군 정민공 송현수, 여흥부부인 여흥민씨 -여산송씨, 정순왕후 - 조선전기 풍저창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송복원(宋復元)이며, 단종의 장인이다. 1454년(단종 2)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로 있을 때 딸이 단종의 비로 책봉되자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고, 곧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제수받았으며 이어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조가 즉위한 뒤 윤대(輪對: 관원들이 왕과 대좌하여 응대하기도 하고 또 정사의 잘잘못을 아뢰는 일) 때에 상왕의 보필을 당부받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대간(臺諫)의 처벌요구가 있었지만 세조의 두둔으로 처벌을 면하였다. 이듬해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이 다시 .. 2022. 11. 22.
(김만균 초배) 정경부인 여흥민씨 https://madangca.tistory.com/entry/%EA%B4%80%EC%A7%81-%EA%B2%BD%EA%B8%B0-%EA%B3%A0%EC%96%91%EC%8B%9C-%EC%9B%94%EC%84%B1%EB%B6%80%EC%9B%90%EA%B5%B0-%EC%A4%91%EC%9E%84-%EA%B9%80%EB%A7%8C%EA%B7%A0-%EC%A0%95%EA%B2%BD%EB%B6%80%EC%9D%B8-%EC%88%9C%ED%9D%A5%EC%95%88%EC%94%A8-%EA%B2%BD%EC%A3%BC%EA%B9%80%EC%94%A8 (관직, 경기 고양시) 월성부원군 중임 김만균, 정경부인 순흥안씨 -경주김씨- ? ~ 1549 본관 경주. 자 중임(仲任). 직제학(直提學) 천령(千齡)의 아들. 15.. 2022. 11. 14.
(공신, 경기 시흥시) 안성부원군 운정 이숙번[충숙공], 서원부부인 청주정씨 -안성이씨- 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芸亭)이다. 아버지는 이경(李坰,), 어머니는 판서를 역임한 남휘주(南輝珠)의 딸 영양 남씨(英陽南氏)이다. 이숙번의 어머니는 전 남편 윤공(尹控)의 자식들을 데리고 이경에게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다. 이숙번과 함께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된 윤자당(尹子當)과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부인은 정총(鄭摠)의 딸 청주 정씨(淸州鄭氏)이다.조선전기 좌군총제, 지승추부사, 지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였다. 1398년에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있으면서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사병을 출동시켜, 세자 이방석(李芳碩)과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심효생(沈孝生)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 2022. 11. 14.
(관직, 충북 진천군) 인성부원군 문청공 송강 정철, 정경부인 문화류씨 -연일정씨, 충청북도 기념물 106호- 조선 중기 때의 문신 · 문인. 서울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유배당하였는데, 그도 관북(關北) · 정평(定平) · 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그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 임억.. 2022. 10. 5.
(공신, 충남 부여군 ) 풍원부원군 조현명 [충효공], 정경부인 칠원윤씨, 정경부인 안동김씨 -풍양조씨- 조선후기 경상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치회(稚晦), 호는 귀록(歸鹿)·녹옹(鹿翁). 조형(趙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상정(趙相鼎)이고, 아버지는 도사(都事) 조인수(趙仁壽)이다. 어머니는 김만균(金萬均)의 딸이다. 1713년 (숙종 39) 진사가 되고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1721년(경종 1) 연잉군(延礽君: 뒤의 영조)이 왕세제로 책봉되자 겸설서(兼說書)로서 세제보호론을 주창, 소론의 핍박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왕세제 보호에 힘썼다. 영조 즉위 후 용강현령, 지평·교리를 역임하고 1728년(영조 4)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생하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였다. 난이 진압된 뒤 그 공으로..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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