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조선초 학자·문신. 양촌(陽村) 권근의 필적.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 1368년 (고려 공민왕 17)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고 69년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이 되고, 우왕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75년 (우왕 1)에는 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였으며, 공양왕이 즉위하자 창왕의 외조부 이림(李琳) 일파로 몰려 극형을 받게 되었으나 이성계(李成桂)의 도움으로 모면하였다. 90년 (공양왕 2) 윤이·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익주(益州)에 유배되었는데, 이때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했다. 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예문춘추관학사(藝文春秋館學士)·대사성(大司成)·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지냈고, 1396년 표전문제(表箋問題)가 발생하자 정도전을 대신하여 명나라에 가 해명을 잘하여 명나라 황제의 예우를 받고 돌아왔다. 이 일로 정도전 일파의 미움을 샀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그들이 숙청되고, 1401년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대사성(大司成)·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이사(貳師) 등을 지냈으며,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했다.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을 기울였는데,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詞章)을 중시하여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하였다.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인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고 이 밖에 《양촌집(陽村集)》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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