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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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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27

(14) 목릉(穆陵) - 인목왕후(仁穆王后) 연안김씨 목릉(穆陵) - 인목왕후(仁穆王后) 연안김씨 -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9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이때 광해군이 세자의 지위에 있었는데, 당시 실권자였던 유영경(柳永慶)은 적통론에 입각하여 적출인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유영경 일파는 몰락하고 대북정권이 들어섰는데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조의 첫째 왕자인 임해군(臨海君)을 제거하고 이어서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킨 뒤 살해하고, 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을 사사시키고, 인목왕후를 폐비시킨 다음 서궁(西宮)에 유폐시켰다. 이러한 패륜행위는 결국 정변의 구실을 주게 되어 인조반정이 .. 2015. 9. 5.
(13) 강릉(康陵) -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강릉(康陵) 명종(明宗), 인순왕후(仁順王后) 청송심씨 -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34년(중종 29) 5월 22일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 12월 21일 경원대군에 봉해졌으며, 1542년(중종 37) 11월 심강의 딸과 결혼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45년 7월 6일 인종의 뒤를 이어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탓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 사건 등을 계기로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과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권은 실추되고 외척 일족의 수탈로 민생이 피폐하여 사회가 불안하였으며,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명종이 20세가 되던 해인 1553년(명종 8)에는 문정왕후가 8년 간의 수.. 2015. 9. 5.
(12) 효릉(孝陵) - 인종(仁宗), 인성왕후(仁聖王后) 반남박씨 효릉(孝陵) 인종(仁宗) 인성왕후(仁聖王后) 반남박씨 - 이름은 호(峼). 자는 천윤(天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1520년(중종 15) 세자로 책봉되었다. 1522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신(儒臣)들과 옛 글을 강론(講論)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웠으며, 중종이 병이 들자 침식을 잊고 간병에 정성을 다했다. 1544년 11월에 즉위했으나 병으로 제대로 정사를 살피지 못했다. 1545년 기묘사화 때 희생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기준(奇遵) 등을 신원하고 현량과(賢良科)를 다시 설치했다.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죽었다. 능은 경기도 고양군에 있는 효릉(孝陵)이다. 시호는.. 2015. 7. 31.
(11) 태릉(泰陵) -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태릉(泰陵)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 문정왕후는 1501년(연산군 7) 10월 22일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태어났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2년 뒤인 17세 때 왕비로 책봉되었다. 당시 인종이 세자로 책봉된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자, 기존의 세자를 폐하고 경원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소윤(小尹)과 기존의 세자를 지키려는 대윤(大尹) 간의 권력싸움이 조정을 어지럽게 하였다. 이 가운데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이 득세하는 걸로 당쟁이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정권은 경원대군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로 넘어왔다.. 2015. 7. 31.
(11) 희릉(禧陵) -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희릉(禧陵)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장경왕후는 1491년(성종 22) 7월 6일 영돈령부사 윤여필의 딸로 태어났다. 1506년(중종 1) 궁중에 들어와 처음에는 숙의에 봉해졌으며,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가 폐출되자 1507년(중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515년(중종 10) 원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경복궁 동궁 별전에서 25세의 나이로 승하하셨다. 희릉은 처음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獻陵)의 서쪽 언덕에 조성하였다, 그런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가 세자인 인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일으켰다. 그 중 하나가 희릉 천릉사건이다. 이는 김안로가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 주장하여 1537년(중종 32) 현재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 2015. 7. 31.
(11) 온릉(溫陵) - 정비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는 1487년(성종 18) 1월 14일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 13세의 나이로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가례를 올렸다. 1506년(연산군 12)에는 반정으로 인해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왕비의 오빠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여기서 비롯될 훗날의 화를 잠재우기 위한다는 반정세력의 명분에 따라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위 당하였다. 폐위 당시 20세였던 단경왕후는 1557년 12월 7일 71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온릉은 폐비의 신분으로 승하한 단경왕후의 능이다. 따라서 능을 조영할 당시에는 왕릉의 상설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1739년(영조 15) 복위되어.. 2015. 6. 7.
(11) 정릉(靖陵) - 중종(中宗) 정릉(靖陵) - 중종(中宗) 중종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 사이의 둘째 아들이자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1488년(성종 19) 3월 5일 태어났다. 1494년(성종 25) 진성대군(晋城大君)에 봉해졌다가 1506년에 연산군의 계속된 폭정에 대항하여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에 의해 조선 11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중종은 즉위 초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1515년(중종 10) 이후에는 조광조를 내세워 철인군주정치를 표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고 사림파를 등용하였으나, 과격한 개혁정치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당파논쟁이 끊이지 않아 기묘사화가 일어나는 등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향약이 전국화되어 유.. 2015. 6. 7.
(10) 연산군묘(燕山君墓) -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거창신씨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거창신씨 - 연산군은 1506년 11월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3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죽은 뒤에는 묘를 강화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위치)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로 조선 10대 왕이다.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즉위 3년 동안은 별 탈 없이 정사를 펼쳤다. 그러나 1498년(연산군 4) 훈구파 이극돈, 유자광 등의 계략에 빠져, 사초(史草)를 문제삼아 김종직 등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1504년.. 2015. 6. 7.
(09) 회묘(懷墓) - [廢]제헌왕후(薺憲王后) 함안윤씨 회묘(懷墓) [廢]제헌왕후(薺憲王后) 함안윤씨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45년?~1482년)는 조선 성종의 후궁이자 왕비로, 간택후궁으로 입궐하여 공혜왕후 사후 왕비로 진봉되었다. 판봉상시사 윤기견과 부부인 신씨의 딸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제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시호는 제헌(齊獻), 묘호는 회묘(懷墓), 본관은 함안이다. 그 정확한 생년은 알 수 없다. 성종 4년(1473년) 3월19일(음)에 간택후궁으로 입궁하여 숙의에 봉해졌다. 성종 5년(1474년)에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그로부터 2년 뒤에 숙의였던 그녀가 임신중인 몸으로, 왕비로 승격되어 4개월 뒤 원자(연산군)를 낳아 중전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2015. 5. 31.
(09) 순릉(順陵) - 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청주한씨 순릉(順陵) 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청주한씨 공혜왕후는 1456년(세조 2) 10월 11일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막내딸로 연화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공릉에 묻힌 장순왕후와는 친자매 사이였다. 1467년(세조 13) 1월 12일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왔으나 예의 바르고 효성이 지극해 세조비 정희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5년 만인 1474년(성종 5) 4월 1일 열아홉의 나이로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승하하였다. “죽고 사는 데는 천명이 있으니, 세 왕후를 모시고 끝내 효도를 다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을 한탄할 뿐이다”라는 마지.. 201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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