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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11) 정릉(靖陵) - 중종(中宗)

by 보현당 201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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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靖陵) - 중종(中宗)

 중종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 사이의 둘째 아들이자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1488년(성종 19) 3월 5일 태어났다. 1494년(성종 25) 진성대군(晋城大君)에 봉해졌다가 1506년에 연산군의 계속된 폭정에 대항하여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에 의해 조선 11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중종은 즉위 초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1515년(중종 10) 이후에는 조광조를 내세워 철인군주정치를 표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고 사림파를 등용하였으나, 과격한 개혁정치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당파논쟁이 끊이지 않아 기묘사화가 일어나는 등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향약이 전국화되어 유교적 향촌질서가 자리를 잡았으며,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많은 서적이 편찬되었다. 경제적으로도 동전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도량형의 통일을 꾀하였으며, 사치를 금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종은 법령을 정리하여 세조 때부터 편찬해오던 『경국대전』을 1485년(성종 16) 반포했고, 1492년(성종 23)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했다. 세조 때의 공신을 중심으로 하는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신진사림세력을 등용, 훈신과 사림 간의 세력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왕권을 안정시켰고, 조선 중기 이후 사림정치의 기반을 조성하는 등 재위 25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왕비 공혜왕후 승하 후 원자(연산군)를 낳은 숙의 윤씨를 계비로 삼았다가 행실을 문제 삼아 폐비 후 사사하였는데, 이는 훗날 연산군 폭정의 계기가 되었다. 연산군 축출에 반대한 아버지로 인해 폐위당한 단경왕후,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까지 3명의 왕비를 두었으며, 1544년(중종 39) 11월 14일 왕세자에게 전위하고, 그 다음날 창경궁 환경전에서 5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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