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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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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군묘41

(공신, 영의정, 경기 안산시) 승평부원군 북저 김류, 정경부인 진주류씨 -순천김씨- 1571(선조 4)∼1648(인조 2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김수렴(金粹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찰방 김훈(金壎)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김여물(金汝岉)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수강(朴壽岡)의 딸이다. 음사(蔭仕)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596년(선조 2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복수소모사(復讐召募使) 김시헌(金時獻)의 종사관으로 호서·영남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1598년 아버지가 전사한 탄금대 아래에서 기생과 풍악을 벌여 놀았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1601년 모함이 풀려 예문관검열로 복직되고 대교(待敎)·주서(注書)·봉교(奉敎) 등을 역임하였다... 2022. 8. 3.
(좌의정, 전북 완주군) 완성부원군 언규 황헌, 정경부인 전의이씨, 정경부인 전주최씨 -우주황씨- 본관은 우주(紆州). 자는 언규(彦規). 황진손(黃振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인(黃璘)이고, 아버지는 황윤조(黃胤祖)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 문과에 급제, 권신 남곤(南袞)의 추천으로 정자가 되고, 정언·사예·집의·사간·장령을 거쳐, 이조정랑에 등을 역임하였다. 1537년 대사간, 1543년 이조판서, 1548년(명종 3) 우의정에 올라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는데, 이는 명종 즉위년에 상을 당하여 집에 있었으므로 공신에 책록되지 못하였는데 재상에 올라 스스로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였다는 공을 내세워 훈적(勳籍)에 추록된 것이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고, 이 해 윤원형(尹元衡)의 심복인 부제학 진복창(陳復昌)에 의하여 공리(功利)를 탐하고 죄인을 함부로 죽였다는 탄핵을 받고 삭.. 2022. 7. 3.
(공신, 충북 충주시) 상락부원군 동원 김귀영, 초배 정경부인 남원윤씨, 삼배 정경부인 함안이씨 -상산김씨, 우의정- 조선시대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현경(顯卿), 호는 동원(東園). 김숙춘(金叔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김응무(金應武)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수관(李守寬)의 딸이다. 154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7년(명종 2)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 2년 뒤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로서 춘추관기사관을 겸해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곧 홍문관으로 옮겨 정자·저작 등을 역임하고 홍문관박사가 되었다. 이어 부수찬·정언·수찬 등을 거쳐 1555년 김홍도(金弘度)·유순선(柳順善) 등과 사가독서하였다. 그 해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이조좌랑으로 도순찰사 이준경(李浚慶)의 종사관이 되어 광주(光州)에 파견.. 2022. 6. 12.
(서울 망우동) 평성부원군 군수(君受) 신경진[충익공], 정경부인 순창조씨 -평산신씨, 서울 유형문화재 95호- 조선시대 형조판서, 병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수(君受). 서울 출신. 기묘명신(己卯名臣) 신상(申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신화국(申華國)이고, 아버지는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다. 신경유(申景礻+谷)·신경인(申景禋)의 형이다. 임진왜란 때 전망인(戰亡人)주 01)의 아들이라 하여 선전관으로 기용되었고, 오위도총부도사로 전보되어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태안군수·담양부사를 거쳐 부산첨사가 되었으나 일본과의 화의에 반대하고, 왜사(倭使)의 접대를 거부하여 체임되었다. 이어 갑산부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우후(咸鏡南道兵馬虞候)로 전보되자, 체찰사 이항복(李恒福)의 요청으로 경원부사와 벽동군수가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대북파(大北派)가 정권을 장악하자.. 2022. 6. 8.
(광해군의 국구) 문양부원군 류자신, 봉원부부인 동래정씨 -문화류씨- 문양부원군 류자신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지언(止彦)이다. 공조판서 유잠(柳潛)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장인이다. 이담(李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태릉참봉, 돈령부직장, 내자시주부, 평강현감, 호조좌랑, 김포현령, 형조정랑, 김제군수, 장악원첨정 등을 지냈다. 1587년 셋째 딸을 왕자의 부인으로 들여보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안악현감으로 나가 해서(海西)의 가담자와 연루자들을 색출, 잡아들였으며, 이후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수행하였다. 그 후 돈령부동지사를 거쳐 외직인 성천부사,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60.. 2021. 7. 14.
(공신) 한산부원군 자방 이손[호간공], 정경부인 양성이씨 -광주이씨- 한산부원군 호간공 자방 이손 1439(세종 21)∼1520(중종 15). 조선 전·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방(子芳). 형조좌참의 이양중(李養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생(李遇生)이다. 아버지는 평안도절도사 이수철(李守哲)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이맹상(李孟常)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은 물론 활쏘기·말타기를 잘 하여 왕명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역임하고, 김해부사·판교(判校)를 거쳤다. 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 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 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 2017. 7. 22.
(정인지 초배) 정경부인 한양조씨 정경부인 한양조씨는 학역재 문성공 정인지의 초배 이시다. 고조부는 부원수(副元帥) 조양기(趙良琪), 증조부는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조돈(趙暾), 조부는 양렬공(襄烈公) 조인벽(趙仁璧), 부는 안정공(安靖公) 조후(趙候) 세종 4년(1422) 경창부윤(慶昌府尹)과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비롯하여 이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냈다. 2016. 10. 13.
(관직) 하동부원군 문성공 학역재 정인지, 정경부인 경주이씨 -하동정씨- 하동부원군 문성공 학역재 정인지 조선의 문신·학자. 자는 백휴(伯휴), 호는 학역재(學易齋), 시호는 문성(文成), 석성 현감(石城縣監) 흥인(興仁)의 아들. 권우(權遇)의 문인. 1411년(태종11) 생원(生員)이 되고, 141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 예빈주부(禮賓注簿)·사헌감찰(司憲監察)·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낸 뒤 1418년(세종 즉위) 병조 좌랑(兵曹佐郞)에 전임되었다. 그후 세종의 총애를 받아 예조와 이조의 정랑(正郞)을 거쳐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로 등용되고, 집현전 응교(應敎)에 이어 1425년(세종 7)에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에 올랐으며, 집현전 응교(應敎)에 이어 1425년(세종 7)에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에 올랐으며, 142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이해 좌필선.. 2016. 10. 13.
(선조의 국구) 연흥부원군 의민공 김제남, 광산부부인 광주노씨 -연안김씨- 연흥부원군 의민공 김제남 1562년(명종 17)∼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공언(恭彦). 아버지는 증영의정 오(祦)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상(常)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년 정언·헌납·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로 뽑힘으로써 돈령도정이 되고, 책비(册妃)되자 영돈령부사에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되었으나,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 2016. 8. 21.
(공신) 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 정경부인 청송심씨 -진주강씨- 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 진주인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자명(子明), 호(號)는 완역재(玩易齋)이다. 회백(淮伯)의 아들이며, 세종(世宗)의 국구(國舅)로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심온(沈溫)의 사위이니 세종(世宗)과는 동서(同棲)간이 된다. 이 가문(家門)은 이러한 혼인(婚姻) 관계 등으로 조선(朝鮮) 초기의 대표적인 명문가(名文家)가 되었다. 즉 형(兄) 우덕(友德)의 아들 맹경(孟卿)은 영의정(領議政)에 올랐고, 아들인 희안(希顔)·희맹(希孟)은 모두 문과(文科)에 올라 이름을 떨쳤으며, 손자(孫子)인 구손(龜孫)은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태종(太宗) 초에 음사(蔭仕)로 계성전직이 되었으며, 세종(世宗) 초에 지양근군사로 발탁(拔擢)되어 .. 201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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