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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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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군묘41

(공신) 진산부원군 문경공 자정 강맹경, 영천군부인 파평윤씨 -진주강씨- 진산부원군 문경공 자정 강맹경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웠다.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를 지낸 우덕(友德)이다.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사인·지승문원사·집의를 지냈다. 1451년(문종 즉위) 우부승지,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1453년(단종 즉위) 계유정난 때 이조참판으로 수양대군을 도왔고, 1455년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는데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등극사(登極使)로 명(明)에 다녀왔다. 1458년 좌의정을 거쳐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다. 2016. 8. 5.
(공신) 해평부원군 소평공 우재 정미수, 정경부인 전의이씨 -해주정씨- 해평부원군 소평공 우재 정미수 1456(세조 2)∼1512(중종 7). 조선 전·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기수(耆叟), 호는 우재(愚齋). 전라남도 광주 출생. 아버지는 형조참판 종(悰)이며, 어머니는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이다. 아버지가 사사(賜死)되자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 세조가 길렀다. 잠저 때의 성종을 시중하다가 1473년(성종 4) 돈녕부직장·형조정랑을 지냈다. 죄인의 자손으로 임관되었다 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무마로 무사하였다. 1476년 중부참봉(中部參奉)을 거쳐 이듬해 선전관을 지내고, 1489년 사헌부장령·사섬시첨정·한성부서윤·인천부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당상관으로 올라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고, 1496년(연산군 2) 충청도관찰사.. 2016. 7. 17.
(공신) 파성부원군 효성공 경지 윤인경, 정경부인 우봉김씨, 정경부인 전주이씨 -파평윤씨- 파성부원군 효성공 경지 윤인경 1476(성종 7)∼1548(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지(鏡之). 순(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계흥(繼興)이고, 아버지는 부사정 구(昫)이며, 어머니는 유종(柳琮)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했으며, 특히 문장에 능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진사 두 시험에 합격하고, 1506년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성균관학록에 선발되었고,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봉교에 이어 다시 성균관전적에 올랐으며, 예조좌랑·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거쳐 1511년(중종 6) 장악원첨정에 이르렀다. 외직으로 나가 태안군수로 근무하는 동안, 아버지의 상을 당해 사직하고 양주의 여막에서 죽을 먹으며 3년 간 시묘하니, 효행이 널리 알려져 명망이 더욱 .. 2016. 7. 10.
(덕종의 장모) 남양부부인 남양홍씨 남양부부인 남양홍씨 한확 선생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있고, 부인은 멀리 떨어진 양주시 은현면에 있다. 이는 부부지간이라도 명당을 찾아 일인일묘(一人一墓)로 쓰겠다는 당시 청주한씨 가풍에 연유한다고 한다. 홍씨부인은 조선초기 양촌 권근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인 한확의 부인이며 세조와는 사돈지간으로 인수대비(성종 어머니)의 어머니다. 2016. 7. 9.
(관직) 문녕부원군 류잠, 정경부인 하동정씨 -문화류씨- 문녕부원군 류잠 류잠(柳潛, 1509-1576) 본관은 문화 중종 35년(1540)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三師)의 관직을 거쳐 예조(禮曺)와 공조(工曺) 판서를 지낸 후 선조조(1576)에 아깝게도 명을 다하지 못하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문녕부원군(文寧府院君)에 봉해졌다. 2016. 7. 2.
(공신) 풍성부원군 이기 [문경공], 정경부인 광산김씨 -덕수이씨- 풍성부원군 문경공 이기 본관 덕수(德水). 자 문중(文仲). 호 경재(敬齋).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526년(중종 21) 12년 동안의 함경북도병마절도사 근무를 마치고, 이듬해 중추부동지사 때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3년 김안로(金安老)의 탄핵으로 강진(康津)에 유배, 1537년 풀려나와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고 1542년 순변사(巡邊使)로서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 침범을 막았다. 1545년(명종 즉위) 우의정에 올라 병조판서를 겸하고, 을사사화 때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과 손잡고 대윤(大尹) 윤임(尹任)의 세력을 꺾었다. 보익공신(保翼功臣) l등으로 풍성부원군(豊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좌의정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2016. 6. 5.
(관직) 풍산부원군 입암 류중영, 정경부인 안동김씨 -풍산류씨- 풍산부원군 입암 류중영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 증조할아버지는 류소(柳沼)이고, 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다. 아버지는 간성군수를 지낸 류공작(柳公綽)이며, 어머니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이형례(李亨禮)의 딸이다. 아들은 류운룡(柳雲龍)과 류성룡(柳成龍)이다.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은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지성균교수가 되었다. 이어 황주와 상주, 양주, 안동의 훈도(訓導)를 역임하면서 지방 교육에 힘을 쏟았다. 1546년(명종 1) 양현고직장을 겸하였으며, 이듬해 박사가 되었으나 파직되었다. 1549년(명종 4)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공조좌랑을 거쳐, 1553년(명종 8) 사헌부장령·사복시정·사간원사간·장악원정이 되었다. 15.. 2016. 4. 27.
(관직) 숭양부원군 김이원, 정경부인 강릉김씨 -선산김씨- 숭양부원군 소암 김이원 김이원(金履元, 1553년 ~ 161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소암(素菴), 자는 수백(守伯), 초명은 신원(信元)이다. 형은 성암 김효원이고 동생은 대사간 김의원이다. 1583년 알성 문과에 급제, 호조좌랑·수찬 등을 지냈다. 정언을 거쳐, 1593년 의주 목사로 부임하여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형조참판에서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백성들이 명나라 군사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도내 행정을 바로잡았다. 1612년 선조의 딸 정근옹주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 뒤에 숭양부원군에 봉해지고 병조판서 ·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경기도 양주의 숭양사(嵩陽祠)에 제향되었다. 그러나 광해군 시기 때 1609년 임해군을 죽이고 1612년.. 2015. 12. 5.
(류성룡 배위) 정경부인 인동장씨 2015. 2. 4.
(공신) 풍원부원군 서애 류성룡 [문충공], 정경부인 전주이씨 -풍산류씨- 풍원부원군 문충공 서애 류성룡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증조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고, 할아버지는 류공작(柳公綽)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류중영(柳仲班)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아들 수암 류진(柳袗)과 손자 졸재 류원지는 그의 도학(道學)을 계승하였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64년(명종 19) 생원·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한 다음 1566년(명종 2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1567년 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였다. 1569년 성균관전적과 공조좌랑을 거쳐 사헌부감찰로서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201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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