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芸亭)이다. 아버지는 이경(李坰,), 어머니는 판서를 역임한 남휘주(南輝珠)의 딸 영양 남씨(英陽南氏)이다. 이숙번의 어머니는 전 남편 윤공(尹控)의 자식들을 데리고 이경에게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다. 이숙번과 함께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봉된 윤자당(尹子當)과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부인은 정총(鄭摠)의 딸 청주 정씨(淸州鄭氏)이다.조선전기 좌군총제, 지승추부사, 지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였다. 1398년에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있으면서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사병을 출동시켜, 세자 이방석(李芳碩)과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심효생(沈孝生)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졌으며, 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그 뒤 이방원의 측근이 되어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이방원에게 “공을 왕으로 추대하고 싶을 뿐이다.”라고까지 말했다 한다. 1399년(정종 1) 좌부승지가 되고, 이듬 해 초 박포(朴苞)가 이방원과 반목하던 이방간(李芳幹)을 충동해 거병하자 군사를 동원해 이들을 제거하였다. 이어 좌군총제(左軍摠制)가 되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1402년(태종 2) 새로 설치한 내갑사(內甲士)의 좌번(左番) 책임자가 되고 지승추부사(知承樞府事)가 되었다. 같은 해 말 안변부사 조사의(趙思義)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진무(都鎭撫)가 되어 좌도도통사와 함께 출정해 진압하였다. 이어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고, 1405년 지공거(知貢擧)에 선임되었다. 1406년 겸중군총제(兼中軍摠制)·겸판의용순금사사(兼判義勇巡禁司事)가 되고, 이듬해 겸충좌시위사상호군(兼忠佐侍衛司上護軍)·겸의흥시위사상호군(兼義興侍衛司上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1408년 십사상호군(十司上護軍)이 폐지되면서 겸중군도총제(兼中軍都摠制)가 되고, 이듬해 동북면절제사가 되었다. 이어 참찬의정부사·겸지의흥부사(兼知義興府事)를 거쳐, 1412년 말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였다. 1413년 병조판서, 이듬해 의정부찬성사가 되었는데, 뒤에 의정부의 직제 개편에 따라 동판의정부사(同判議政府事)·좌참찬·찬성이 되었다. 한편, 1414년 지춘추관사로서 영춘추관사 하륜(河崙) 등과 함께 『고려사』 중 공민왕 이후의 사실을 고쳐서 바로잡도록 명을 받았다. 이듬 해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원래 성품이 망령된데다 자신의 공과 태종의 총애를 믿고 거만방자해 국왕에게 불충하고 동료들에게 무례하게 굴어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아, 결국은 관작을 삭탈당하고 1417년 경상도 함양에 유배되었다.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짓게 되자 선왕 때의 일을 상세히 알고 있었기에 서울에 불려와서 편찬을 도왔으나, 편찬이 끝난 뒤 다시 유배지에 보내져 그곳에서 죽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숙번(李叔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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