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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숙선옹주, 영명위 홍현주 [효간공] -풍산홍씨-

by 보현당 2016.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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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선옹주

효간공 영명위 홍현주

 

 

-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년 3월 1일 ~ 1836년 6월 7일)는 조선의 왕족이다.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와 수빈 박씨(綏嬪 朴氏, 1770~1822)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로,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동복누이이다. 1803년(순조 3), 숙선옹주의 혼례를 위해 금혼령이 내려지고 이듬해 희정당에서 숙선옹주의 부마 초간택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중희당(重熙堂)에서 재간택이 이루어지고 전 정랑(正郞) 홍인모(洪仁謨)의 아들이자 홍석주의 동생인 홍현주가 부마로 뽑혔다. 1804년 5월 27일 숙선옹주는 12세의 나이에 홍현주에게 하가하였다. 숙선옹주는 순조의 유일한 동복누이로 순조와는 사이가 좋았는데 순조는 옹주의 혼인에 기해 내수사에 명해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천 냥을 내리게 하고 이는 숙선옹주에 한한 일이니 전례로 삼지 말라고 하교했다. 이후에도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숙선옹주의 집에 임하기도 했다. 이후 숙선옹주의 후손이 끊어져 남편 홍현주와 같은 풍산 홍씨 일가인 홍명희가 제사를 받들었다. 홍선표는 저서 《조선요리학》에서 숙선옹주가 무를 썰어 만든 요리를 임금에게 올려 크게 칭찬을 받았는데 이것이 깍두기의 시작이라고 소개하였다. 아버지인 정조가 승하했을 때 숙선옹주의 나이가 겨우 8세였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오라비인 순조인 것으로 보인다.

- 홍현주(洪顯周, 1793년 ~ 186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차녀 숙선옹주의 남편이다. 우의정을 지낸 홍석주는 그의 형이다.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 · 약헌(約軒)이며, 본관은 풍산이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1807년 숙선옹주와 가례를 치르고 영명위(永明尉)에 봉해졌다. 그가 부마로 간택된 이유는 홍현주의 조부인 홍낙성혜경궁 홍씨의 6촌오빠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1815년(순조 15년)에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817년 형 홍석주가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순조에게 상소를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정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대를 섬겼으며 1865년(고종 2년)에 죽었는데 대왕대비 조씨가 장례 비용으로 돈 1,000냥, 포(布)와 목(木) 각 5동(同)를 내리게 했다.  그의 사가 외당(外堂)에는 순조의 어필전서로 〈금옥당(金玉堂)〉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었으며, 원정(園亭)에는 익종의 어필로 〈시림정(市林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시문과 서화, 차를 즐겼는데 의 문인 오숭량, 옹수곤 등과 시문을 통해 교류했다.《해거시집》(海居詩集)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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