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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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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17

(08대) 공릉(恭陵) - 정비 장순왕후(章順王后) 청주한씨 공릉(恭陵) - 장순왕후(章順王后) 청주한씨 -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1445년 2월 22일(음력 1월 16일) ~ 1462년 1월 5일(1461년 음력 12월 5일))는 조선 예종(睿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 상당부원군 충성공 한명회(上黨府院君 忠成公 韓明澮)와 황려부부인 민씨(黃驪府夫人 閔氏)의 셋째 딸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세자빈 시절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요절하였다. - 공릉은 장순왕후의 능이다. 그녀가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자빈묘로 간략히 조영하였다.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없으며, 일반적으로 왕릉에 세워지는 망주석도 생략되었다. 그러나 석양과 석호가 호위하고 있는 봉분은 그 크기가 크며 혼유석과 장명등, 문석인과 석마가.. 2014. 11. 2.
(08대) 창릉(昌陵) -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청주한씨 창릉(昌陵) - 안순왕후(安順王后) 청주한씨 -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1445년? 음력 3월 12일 ~ 1499년 2월 3일(1498년 음력 12월 23일)는 조선 예종의 계비이다. 시호는 인혜명의소휘제숙안순왕후(仁惠明懿昭徽齊淑安順王后)이다. 청천부원군 양혜공 한백륜(淸川府院君 襄惠公 韓伯倫)과 서하부부인 임씨(西河府夫人 任氏)의 딸로,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성종 즉위 초 그와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와의 서열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 안순왕후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태어났다. 예종의 첫째 부인 장순왕후가 세자빈의 신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62년 가례를 올리고, 1463년 예종의 즉위와 동시에 왕비가 되었다.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만에 승하하자 1471년(성종 2) 인혜대비에 봉해.. 2014. 11. 2.
(추촌) 경릉(敬陵) - 소혜왕후(昭惠王后) 청주한씨 경릉(敬陵) - 소혜왕후(昭惠王后) 청주한씨 인수대비(仁粹大妃)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년 10월 7일(음력 9월 8일) ~ 1504년 5월 11일(음력 4월 27일)는 조선 초기의 세자빈이자 덕종(德宗, 추존왕)의 왕비이며 시호는 인수자숙휘숙명의소혜왕후(仁粹慈淑徽肅明懿昭惠王后)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의 큰아들인 도원군(의경세자, 덕종)과 혼인하여 군부인에 봉작되었으며, 1455년(세조 즉위년)에 시아버지 수양대군이 왕위로 즉위하여 자신은 맏며느리로서 세자빈이 되어 궁궐에 들어갔으나, 1457년(세조 3년)에 남편 의경세자가 20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어 사가로 물러났다. 그러나 1469년에 자신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등극하고, 자신도 궁궐에 다시 들어가 .. 2014. 11. 1.
(계양군 배) 정선군부인 청주한씨 정선군부인 청주한씨 정선군부인 한씨(1426∼1480)는 세종의 아들 계양군의 부인이다. 한씨는 좌의정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이다. 2014. 9. 13.
(정효준 3배) 정부인 청주한씨 3배 정부인 청주한씨 세 번째 배위는 정부인 청주한씨 이시다. 청주한씨 할머님의 친정 5대조부님께서는 예종의 국구이신 청천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이시며, 고조부께서는 청은군 한환(韓懽)이시다. 증조부께서는 경력을 지내신 한경운(韓慶雲)이시다. 조부께서는 별좌를 지내신 한기(韓淇) 이시며, 부친께서는 상호군을 지낸 한부길(韓富吉)의 여식이시다. 청주한씨 할머님께서도 자손이 없으시며, 예성의 국구집안 후손이 되신다. 묘는 해성군 할아버지 묘아래 있다. 2014. 4. 11.
(문신) 유암 한계윤, 정부인 경주최씨 유암 한계윤 한계윤 韓繼胤 1415(태종 15)∼1485(성종 16)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호는 유암(柳岩)이고 본관은 청주이다. 개국공신 상경의 손자이며, 함경도관찰출척사 혜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성달생의 딸이다. 이조판서 계미, 좌찬성 계희, 이조판서 계순의 형이다. 1434(세종 16) 개국원훈의 장손으로 19세 때 음사하여 세조 즉위시 좌익 원종공신에 책록되어 통훈대부 천녕현감을 지냈다. 또 사헌부장령으로 승천되었고, 가선대부 검교참판 겸 경연참찬관을 역임했다. 2014. 2. 28.
(숙종의 국구) 광성부원군 김만기 [문충공], 서원부부인 청주한씨 광성부원군 문충공 정관재 김만기 본관은 광산.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증조부는 형조참판을 지낸 장생(長生)이며, 아버지는 생원 익겸(益兼)이다.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숙부 익희(益熙)에게 수학하고,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 되었다. 1652년(효종 3)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수찬·정언·교리 등을 지냈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때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했으며, 3년설을 제기한 남인 윤선도(尹善道)를 공격했다(→ 기해예송). 1671년(현종 12) 딸이 세자빈이 되었고, 1673년 영릉(寧陵)을 옮길 때 산릉도감(山陵都監)의 당상관이 되었으며, 그뒤 병조판서를 지냈다. 1674년 숙종이.. 2012.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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