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思陵)]
-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때(1698년)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은 동계만이 남아 있다. 사릉은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는 양묘사업소 묘포장이 있어서 많은 전통 수종의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정순왕후는 판돈녕부사 송현수의 딸로, 1440년(세종 22)에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14세의 나이에 타고난 성품과 검소의 미덕을 인정받아 간택되었고, 그 다음해에 어린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영의정의 자리에 앉아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때였으므로, 단종과 정순왕후 부부는 스스로 아무런 일도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1455년(단종 3) 6월 11일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수강궁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57년(세조 3) 사육신의 주동으로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던 사건이 발각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고, 정순왕후는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궁궐을 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의 동망봉 기슭에 초가집을 짓고 시녀들이 해오는 동냥으로 끼니를 잇다가, 염색업을 하며 평생을 살았다. 1521년(중종 16) 6월 4일을 일기로 장장 7대 왕대에 걸친 삶을 마감하였으니 이 때, 춘추 82세였다.
|
휘 |
군호 |
벼슬 |
묘소 |
5대 |
(鄭悰) |
영양부원군 |
문종대왕 사위 영양위 (배 경혜공주) |
대자동 |
6대 |
(鄭眉壽) |
해평부원군 |
우찬성 |
사릉 |
7대 |
(鄭承休) |
해림군 |
충훈부도사 |
사릉 |
8대 |
(鄭元禧) |
해령군 |
사헌부감찰 |
사릉 |
9대 |
(鄭欽) |
해성군 |
돈령부판관 |
사릉 |
10대 |
(鄭孝俊) |
해풍군 |
돈령부지사 |
사릉 |
11대 |
(鄭植) |
해원군 |
남양부사 |
여주 |
12대 |
(鄭重徽) |
해흥군 |
의금부지사 |
사릉 |
- 성명을 클릭하시면 묘소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틀린 경우 말씀하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사릉복릉(復陵)으로 인하여, 해원군묘소는 서초 백석동에 이장되었다가 다시 여주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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