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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15) 광해군묘(光海君墓) - 광해군(光海君), 문성군부인(文城君夫人) 문화류씨

by 보현당 201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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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光海君, 157564(음력 426) ~ 164187(음력 71)[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성은 이(), 휘는 혼(),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과 칭찬은 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위 옹립에 공이 컸던 대북파의 반발로 당쟁에 휘말리고 말았으며, 이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줄곧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패륜자로 일컬어져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591(선조 24) 종계변무 때에는 특별히 광국원종공신 1등에 특별히 책록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부왕의 견제로 호성원종공신이나 선무원종공신에도 책록되지 못했다.

 

생전에 폐위되었기에 사후 시호는 없으며, 왕이었을 때 쓴 존호는 체천흥운준덕홍공신성영숙흠문인무서륜입기명성광렬융봉현보무정중희예철장의장헌순정건의수정창도숭업대왕(體天興運俊德弘功神聖英肅欽文仁武敍倫立紀明誠光烈隆奉顯保懋定重熙睿哲莊毅章憲順靖建義守正彰道崇業大王)이다.

사적 제363호. 광해군은 초기에는 빈민구제와 국방에 주력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1623년(인조 1) 3월 광해군으로 강봉되었으며, 같은 해 3월 폐비 유씨와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1641년 7월 이배지에서 죽어 그 곳에 장사지냈다가 1643년 10월에 지금의 묘소로 천장()하였다. 문성군부인 류씨()는 지돈녕부사 자신()의 딸로 1576년에 태어나 1592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왕비로 진봉()되었다. 1623년 광해군과 함께 폐출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으며 그해 10월 강화도에서 죽어 광주군 적성동에 장사지냈다가 광해군이 죽은 뒤 같은 묘역에 천장하였다. 묘는 쌍분()이며 곡장()ㆍ혼유석()ㆍ장명등()ㆍ문인석() 등이 있다.  광해군 묘비 전면에 ‘(광해군지묘)’, 후면에 ‘ (신사칠월초일일병졸어제주명철조삼일)’이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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