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숙공 오백 이주국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 시호는 무숙(武肅). 신종군의 6남 장연령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함(涵)이며 어머니는 증 찬성(贊成) 구상정(具尙禎)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 이듬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 주부 · 판관 등을 지냈다. 1748년(영조 24)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온 뒤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는데 이 때 처음 호조에 무랑(武郞)이 설치되었다. 1754년(영조 30) 충청도 수군절제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1759년(영조 35)에는 함경북도 절제사가 되었다.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莊獻世子) 장례 때 여사대장(輿士大將)을 역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황해도 ·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76년(영조 52) 총융사(摠戎使)에 임명되었으며, 이 해에 영조대왕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훈련원 도정으로 여사대장이 되었다. 1780년(정조 4)에는 어영대장을 거쳐 이듬해 좌우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그 후 형조판서를 거쳐 1796년(정조 20)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 군제삼사(軍制三事)를 올렸다. 그 내용은 첫째 번상(番上)으로 인한 경비의 낭비와 폐단을 고려하여 어영청 · 금위영의 군자(軍資)로써 경사지민(京師之民)을 모병하여 충원할 것, 둘째 궁궐 순찰을 위하여 50칸에 1군포(軍鋪), 1군포에 군 4인을 두어 수직(守直)할 것, 셋째 수군 · 육군의 지역배치를 고려할 것 등이다. 장군으로 20여 년 있는 동안 총융청에 7회, 어영(御營)에 6회나 임명되었고, 금영대장(禁營大將) · 훈국대장(訓局大將) 등도 여러 번 지냈다.
용모는 건장하고 뛰어났으며 성품은 강직하여 권세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망은 있었으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드물어 남과 반목할 때가 많았다. 여러 번 문신의 횡포를 감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홍국영(洪國榮)이 실세한 뒤 정조선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성도 · 궁성 호위의 임무가 주어졌는데, 병졸을 잘 어루만질 줄 알았다. 춘당대(春塘臺)에서 활쏘기를 할 때의 모습이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 · 측백나무 같다고 하여 정조선황제가 `오백(梧栢)'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배위는 남양홍씨 계상(繼相)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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