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정중만
자(字)는 여일(汝一) 호(號)는 백석(白石) 필선(弼善) 식(植)의 아들 14살에 현종(顯宗)이 인평대군(麟坪大君)의 딸과 혼인(婚姻)하게 하였고 18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젊어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대권안의 여러 편액(編額)을 썼다. 1689년 사옹원(司饔院) 직장(直長)이 되었다가 익위사(翊衛司) 부솔(副率)로 옮겼다. 이듬해 죄없이 철산으로 귀양(歸養) 갔다가 1694년에 풀려 돌아와 위솔랑(衛率郞) 형조감(刑曹監)으로 승진(陞進)되고 안음현 현감(縣監)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껴 쓰고 남는 것으로 제민고(濟民庫)를 처음 만들었다. 황간현감으로 나가 다스리는 일이 가장 뛰어난지라 청도(淸道)군수(郡守)로 승진되었다. 이어 함열 양근 진산의 각 군수(郡守)와 의금부(義禁府) 도사(都事) 형조정랑(刑曹正郞) 충훈부(忠勳府)도사(都事)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전라도(全羅道)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1728년 한성(漢城)주부(主簿)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참여(參與)하여 아버지 필선공을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追贈) 받게 했다. 또 공조정랑과 사도시 첨정(僉正)을 지냈다. 현재 정곡빌딩 동관 뒷편의 鄭谷이라는 표석(表石)은 공의 필적(筆跡)이다. 배위 숙인 완산이씨는 인평대군의 따님이시다.
<< 서초동(백석동 정곡마을) 정곡표지석>>
정곡 유래 - 정도공 정역(효령대군의 장인)의 묘가 조성되고 묘아래에 재실을 마련하여 자손이 세거함으로 마을 이름을 정곡이라 호칭하였다. 500여넌동안 해주정씨들이 살던 집성촌 이었으나 1985년 법원 및 검찰청이 건립됨으로 그 때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정곡 표지석은 서초동 정곡빌동 동관 과 서관에 위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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