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음력 9월 12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정비이다. 별호는 절비(節妃),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된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청주)(安邊,淸州)이다.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르기 1년 전에 사망하였다.
1337년 음력 9월 고려 동북면 영흥(永興) 풍류산 아래 금리(琴理)라는 곳에서 호족으로 태어났다. 한씨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뒷산에는 오색 영롱한 구름이 감돌았다 하여 이산을 풍류산(風流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훗날 왕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순조 24년이던 1824년에 이 마을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15살이 되던 1351년에 비슷한 호족 신분의 2살 연상인 이성계와 혼인을 하여 6남 2녀를 낳았다. 1364년 이성계가 삼선(三善)·삼개(三介)의 난[1]을 진압하여 화주(和州)[2] 이북의 땅을 회복시키는 등 전쟁터를 누비던 동안 집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이같은 한씨의 내조는 이성계가 고려 정계의 일인자로 부상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가 개경에서 강씨를 경처(京妻)로 맞이한 다음에는 이성계와 같이 머물지 않았고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1388년 위화도 회군 때에는 생명의 위협이 염려되어 식구들을 데리고 개경에서 벗어나 동북면으로 피신을 갔으며, 조선 개국 1년 전인 1391년 음력 9월 12일, 위장병의 악화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조선이 개국하기 전에 사망을 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된 후 1393년(태조 2년) 음력 9월 18일 절비(節妃)로 추존되었고, 그로부터 7년 후에 정종이 1398년(정종 원년) 음력 11월 11일 신의태왕후(神懿太王后)로 추존하여 종묘에 신주를 부묘하였다. 그 뒤를 이어 태종은 1408년(태종 8년) 음력 9월 6일 존호가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로 추상되었고, 숙종은 1683년(숙종 9년) 음력 6월 12일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로 개책하였다. 1899년(광무 3년) 양력 12월 19일에는 고종에 의하여 황후로 격상되어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되었다. 능은 경기도 개풍군 상도면 풍천리 갑좌경향에 위치한 제릉(齊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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