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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자수 권경우, 정부인 함종어씨 -안동권씨-

by 보현당 2016.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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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권경우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綏). 집지(執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화(永和), 아버지는 판관 질(), 어머니는 우참찬 이승손(李承孫)의 딸이다. 동생이 대사헌 경희(景禧)와 이조정랑 경유(景裕)이다.

 

1470(성종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뒤에 예문관봉교로 승진해 사관 선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듬해에는 천추사(千秋使)의 검찰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통사(通事) 조종손(趙宗孫) 등의 밀무역을 검찰한 공로로 4계급 승진해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수찬으로 옮겨 제주경차관(濟州敬差官)으로서 제주도민의 궁핍현상을 지적하고, 그 대책의 강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다시 사간원정언이 되어 임사홍(任士洪)이 국정을 농락함과 간사하기 이를데 없음을 규탄했다.

 

한편, 국왕의 수렵 활동시 승지와 사관의 대동을 금하자 불가함을 주장하고, 국왕의 거동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기술하게 했다.

 

1482년 홍문관부교리로 있을 때, 왕비 윤씨를 폐위시킨 처사를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1486년에 직첩이 환급되어 예관(禮官)으로 복직되고, 이어서 사간으로서 평안도병마절도사 이조양(李朝陽)의 군비 소홀과 군공 사칭을 탄핵, 면직시켰다.

 

그 뒤 형조참의·동부승지·우승지·도승지를 역임하고, 1498(연산군 4) 사헌부대사헌에 올라 사찰 건립의 불가함을 논하고, 정숭조(鄭崇祖이창신(李昌臣) 등의 탐폭을 규탄했다. 그러나 그해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동생이 주모자로 처형되었고, 자신도 연루되어 강릉부 관노로 배속되었다.

 

성품이 강직해 권신에게 구차하게 의부하지 않았으며, 직무를 공정히 다스려 많은 사람들이 감복했다. 중종반정으로 적몰가산이 환급되고 죄명도 신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경우 [權景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부인 함종어씨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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