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문왕 낙랑후 지백호
(鄭씨 도시조)
- 삼국사기(三國史記)」 와 「동경지(東京誌)」에 의하면, 지백호(智伯虎)는 기원전 117년(한무제 원수 6) 경주(慶州) 화산(花山)에 강림(降臨)하여 부족국가(部族國家)이던 사로(斯蘆)의 여섯 고을 중 자산진 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新羅) 건국(建國)에 모체(母體)를 이루었고,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그의 현손 대(玄孫代)에 와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賜姓) 받을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改稱)되면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법흥왕 때 문화(文和)로 시호를 받았고,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에 추봉(追封)되었다. 그 후 경주 정씨는 시조의 후대로 내려오면서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등 크게 4파로 갈라졌고, 지손(支孫) 계통에서는 30여 본(本)으로 본적(本籍)되어 우리 나라 모든 정씨(鄭氏)의 대종(大宗)을 이루었다.
-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수(元狩) 6년 갑자(甲子: 서기전 117)에 하늘에서 육대인(六大人)을 경주(慶州)땅에 탄강(誕降)시켜 육촌(六村)의 장(長)을 삼았다.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니 촌장(村長)은 알평(閼平)으로 처음 표암봉(瓢巖峰)에 강림(降臨)하였고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忖)이니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道利)로 처음 형산(兄山)에 강림하였고 셋째는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이니 촌장(村長)은 지백호(智伯虎)로 처음 화산(花山)에 강림하였고 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이니 촌장은 구례마(俱禮馬)로 처음 이산(伊山)에 강림 하였고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이니 촌장은 지타(祇沱)로 명활산(明活山)에 강림하였고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니 촌장은 호진(虎珍)으로 처음 금강산(金剛山)에 강림(降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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