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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나옹 박황, 정부인 남양홍씨 -반남박씨-

by 보현당 201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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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박황

1597(선조 30)∼1648(인조 2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덕우(), 호는 나옹()·나헌(). 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응복()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동열()이며, 어머니는 정엄()의 딸이다. 사복시정() 동언()에게 입양되었다. 162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4년 예문관검열()로 처음 벼슬길에 올라 세자시강원설서()·홍문관정자()를 거쳐 대사간·이조참의를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으며, 이듬해 청나라가 화의에 반대한 척화신() 17인의 압송을 요구하자, 격분한 그는 “일대()의 명사들을 모조리 호구( : 호랑이의 굴)에 보낼 수 없다. 한두 사람만 보내고 버티자.”고 주장하여 15인은 무사할 수 있었다.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갔다가 돌아와 1638년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이어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그때 김상헌()·정온() 등을 모함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사직하였으나, 곧 대사간에 등용되고 또다시 심양에 불려갔다가 돌아와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1644년심기원()의 역모에 연루되어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전주부윤을 지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황 [朴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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