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빈 원주원씨(誠嬪原州元氏)는 1396년(태조 5) 신덕 왕후(神德王后)가 승하한 후, 1398년(태조 7) 2월 25일 태조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태조가 행행(行幸)할 때 원씨가 남자의 복장을 하고 시종하였다고 한다. 1406년(태종 6) 태조의 후궁들을 봉작하였는데, 이때 성비(誠妃)로 책봉되었으며 태조의 후궁 중 하나였던 유씨(柳氏) 또한 정경 궁주(貞慶宮主)가 되었다. 원씨의 책봉 소식을 듣고 태상왕이었던 태조가 기뻐하였다고 한다. 태종은 태조의 승하 이후에도 원씨에게 물건을 진상하는 등 어머니의 예로 대하며 극진히 섬겼다.
이후 국가의 각종 예식에도 원씨는 왕실의 일원으로 계속 참여하였으나, 예(禮)에 관한 이해가 명확하지 않았던 당시 원씨의 지위 문제는 계속 논란거리가 되었다. 태조가 애초부터 원씨를 계실(繼室)이 아닌 첩으로 대우하였다고 하여 예식 당시의 자리 배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며, 원씨를 비(妃)로 봉한 것은 단지 고려조의 습관을 따라 하였을 뿐, 정후(正后)로서 논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원씨의 사망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졸(卒)하였다’고 하여 ‘승하(昇遐)’ 등 존숭의 뜻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러한 지위 문제는 사망 후 상례(喪禮)를 둘러싼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결국 각종 상구(喪具)는 모두 관(官)에서 갖추게 하되, 종친으로 품질(品秩)이 낮은 사람을 상주(喪主)로 삼게 하였다. 다만 장례는 종친의 상등(上等)의 예(例)를 쓰도록 하여 존숭하는 뜻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빈원주원씨[誠嬪原州元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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