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사대부 묘

(문신, 경남 산청군) 역양 정유명 -초계정씨-

by 보현당 2022. 8. 26.
반응형

정유명(鄭惟明) 1539(중종 34)1596(선조 29).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극윤(克允), 호는 역양(嶧陽). 조부는 확계(蠖溪) 정옥견(鄭玉堅)이고, 부친은 진용교위(進勇校尉)증좌승지(贈左承旨) 정숙(鄭淑)이다. 갈천(葛川) 임훈(林薰) 문하에 유학하였으며 옥계(玉溪) 노진(盧禛)을 종유(從遊)하였고, 1563(명종 18) 25세 되던 해 남명(南冥) 선생이 남계로 와서 일두(一蠹) 선생의 사당을 배알하고 문생들의 강론을 들었다. 35세 때인 1573(선조 6)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15위로 합격하였으나, 홀로 된 모친 진주정씨의 노환 때문에 성균관에 입학하지 않고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그 신도비(神道碑)가 역동(嶧洞: 현재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89번지)에 세워져 있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이 고령서창현풍 등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성팽년(成彭年) 등과 함께 안음(安陰)에서 기병유사로 활약하였다. 아들은 정위(鄭緯), 이조참판(吏曹參判)부제학(副提學) 정온(鄭蘊), 정백(鄭絔)을 두었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에 증직(贈職)되었으며, 1633(인조 11) 계유에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가 내리고, 1634년 역천향사(嶧川鄕祠)에 배향(配享)되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