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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서울 도봉구) 전은 안상계, 숙부인 언양김씨 -죽산안씨-

by 보현당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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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전은(田隱). 할아버지는 안망지(安望之)이고, 아버지는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盲聃)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 공주(貞懿公主)이다.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큰아들이 안방열(安邦烈), 둘째 아들이 안방형(安邦炯)이다. 안상계(安桑鷄)[1444~1496]의 외할아버지인 세종은 딸 정의 공주가 낳은 자식들의 이름을 친히 지어 주었는데, 안상계는 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뽕나무에서 닭이 울었기 때문에 ‘상계(桑鷄)’라고 작명하였다고 한다. 안상계는 왕위를 노리는 수양 대군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단종 대에 저자도(楮子島)에 은거하면서 김종직(金宗直)·남효온(南孝溫) 등과 함께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교유하였다고 한다. 당시 김종직이 안상계에게 사계절을 주제로 하여 지어 준 연작 4수의 칠언 율시가 남아 있다. 첫 번째 시는 봄의 매화를 소재로 한 「매파춘색(梅坡春色)」, 두 번째 시는 여름에 대나무 창문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소재로 한 「죽창하풍(竹窓夏風)」, 세 번째 시는 가을에 국화가 핀 뜰에 비치는 달빛을 소재로 한 「국정추월(菊庭秋月)」, 네 번째 시는 겨울에 소나무 위의 눈을 소재로 한 「송대동설(松臺冬雪)」이다. 안상계는 성종 대에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487년(성종 18) 5월 23일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다음 날 사간원 정언 박희손(朴喜孫)이 “안상계는 부귀한 집에서 자라 백성의 일을 알지 못하니 백성과 친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고, 수령의 사무가 허다하게 많은데 역시 전야(田野)의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양주 목사에 그를 임명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건의하였다. 이에 안상계가 바로 다음 날 “백성을 다스리는 재주가 없으므로 사간원에서 신을 논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신의 조부모와 처부모(妻父母)의 무덤과 전장(田莊)이 모두 양주 지역 내에 있으므로 직무에 나아가는 것이 미안합니다.”라고 하여 수원 부사로 환차(還差)하였다. 1492년(성종 23) 유자광(柳子光)의 건의로 학술과 재주를 높이 평가받아 돈령부 도정을 지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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