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오로 류한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단오(端五), 자호는 애오로(愛吾盧). 문성공 류순정(柳順汀)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류진운(柳振運), 아버지는 유담(柳紞)이다. 부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며,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류희(柳僖)의 아버지이다.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담운(澹雲) 조명교(曺命敎)에게 수학하여 『주역』과 『예기』에 통달하였고 시문에 능하였다. 행서·해서를 잘 쓰고 화살을 잘 쏘았으며, 의술·수학·역법 등에도 조예가 있었다. ‘애오로’라 자호할 정도로 자연 속에 살기를 좋아하였다.
- 사주당 전주이씨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조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으로, 남편은 목천현감인 류한규(柳漢奎)이고, 아들 유희(柳僖)는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충청도 청주(淸州) 서면(西面) 지동(池洞)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녀자의 솜씨를 익히고 옛 열녀를 마음으로 사모하여 이에 『소학(小學)』, 『가례(家禮)』, 『여사서(女四書)』를 길쌈하는 틈틈이 외우고 익혔다. 이어 『논어』·『맹자』·『중용』·『대학』 등의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였다. 처녀시절부터 부친을 위하여 육미와 비단 같은 것은 먹지도 입지도 아니하였고 예절을 지켜 행동하니 이웃마을에 널리 소문이 퍼졌다. 이사주당의 덕행과 인품을 흠모하여 청혼한 목천현감 유한규와 결혼하여 정신이 흐린 늙은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받들어 모셨다. 부부는 30년 동안 서로 깊은 이치를 토론하고 성정(性情)을 읊으며 지기(知己)로 소중히 여기면서 살다가, 1784년(정조 8) 남편이 죽고, 이사주당은 1821년(순조 21) 용인에서 죽었다. 이사주당은 “인간이 생태(生胎)할 때는 누구나 하늘로부터 똑같은 천품을 부여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태내 10개월 사이에 인간의 좋고 나쁜 품성이 형성되고, 또 출생 후의 생장 과정에서 다시 군자와 소인의 분별이 결정되며 인간의 품성이 결정되는 처음 10개월의 태내 교육이 출생 후의 교육 보다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민간에 전승되는 태교를 널리 수집하고, 그 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태교신기』를 저술했다.
<<내용출처 : 용인디지털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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