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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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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3

(문신) 서촌 충민공 송도남, 정부인 고령신씨 -진천송씨- 조선시대 병조좌랑, 의주판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만리(萬里), 호는 서촌(西村). 송세증(宋世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하(宋賀)이고, 아버지는 봉사(奉事) 송응일(宋應一)이며, 어머니는 박응현(朴應賢)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생원시에 합격, 활인서별제·의금부도사를 거쳐 1615년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근무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한때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인조반정 뒤에 강원도도사를 거쳐 의주판관에 임명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 때 이조에서는 변방고을에 부임함을 꺼린다고 하여 탄핵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영유현령(永柔縣令)으로 부임하였다.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後金)의 군대가 침입하자.. 2023. 5. 9.
(문신) 석호 충경공 윤문거, 정경부인 평창이씨 -파평윤씨- 본관 파평(坡平). 자 여망(汝望). 호 석호(石湖). 시호 충경(忠敬). 김집(金集)의 문인.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때 인조를 남한산성(南漢山城)에 호종한 뒤 제천현감을 사퇴하였다. 1652년(효종3) 동래부사 때 교역 단속을 게을리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관직을 사퇴하고 주자(朱子)연구에 전념하였다. 좌찬성(左贊成)이 추증되고, 연산(連山) 구산서원(龜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석호집》이 있고, 글씨에 뛰어나 (경기 양평)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문거 [尹文擧]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2023. 1. 13.
(문신, 경기 광주시) 동지충부사 서흔남, 정부인 한씨 남한산성 서문 밖 널무니에서 태어났다. 천민으로 기와 잇기와 대장장이, 장사꾼 등으로 생계를 꾸리다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청나라 군대에 포위당해 성 안팎의 소식이 끊기자 전령을 자처하였다. 한지에 쓴 왕의 유지(諭旨)를 노끈으로 꼬아 옷으로 얽어매고 거지와 병자 행세를 하며 적진을 빠져나가 경상도·전라도·충청도·강원도에 전하고, 적의 동태를 알려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천민 신분을 벗고 정2품 당상관인 훈련주부(訓鍊主簿)와 가의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667년 사망하여 광주군 중부면 검복리 병풍산에 묻혔는데 이후 후손들이 화장하여 묘비를 남한산성 관리사무소 앞으로 옮겨놓았다. 한편, 그와 관련하여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던 인조를 등에 업고 무사히 대피시..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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