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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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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대군)묘6

(환조) 완풍대군 이원계 [양평공], 부부인 남평문씨, 부부인 경주김씨 완풍대군 양평공 이원계 휘는 원계(元桂)이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환조대왕의 1남으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태조고황제 잠저 시에는 공과 의안대군 등 3형제의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태조고황제와 함께 누차 홍건적과 왜구를 토벌, 혁혁한 공을 세웠다. 1359년(고려 공민왕 8)에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와 노략질을 하자 이를 격파하여 2등공신이 되고 1361년 2차 침입 때 내부령(內府令)으로서 안우(安祐) 등과 함께 박주(博州)에서 홍건적을 크게 무찌르고 다음 해에는 수도인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1363년에 또 2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375년(고려 우왕 1) 원제(元帝)가 고려 국왕으로 임명한 심왕(瀋王) 모자가 반역자 김의(金義)의 무리를 거느리고 이미 신주(信州)에 도착하였다는 보고에.. 2015. 1. 18.
(환조) 의안대군 이화 [양소공] 의안대군 양소공 이화 환조대왕과 정안옹주(定安翁主)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휘는 화(和)이고 호는 이요정(二樂亭), 시호는 양소(襄昭)이다.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綠大夫)이며 태조고황제의 동생이다. 고려 공민왕 때 대장군으로서 왜적과 홍건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웠고 우왕 때는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왜적을 소탕하였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 회군 때 조전원수로서 우군도통사인 태조고황제를 도와 활약하여 1393년(태조 2) 회군1등공신 녹권을 받았다. 1389년 개국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순충좌명(純忠佐命)개국1등공신 녹권을 받고 의안백(義安伯)으로 봉작되었다. 1395년(태조 4) 태조고황제를 모시고 조정에서 중추 역할.. 2015. 1. 18.
(세종) 영응대군 이염 [경효공], 춘성부부인 해주정씨, 대방부부인 여산송씨, 연성부부인 연안김씨 경효공 영응대군 이염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세종 16)∼1467(세조 13)] 휘는 염(琰), 시호는 경효(敬孝). 세종대왕의 제8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에 봉해지고, 1443년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에 영응대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배위는 해주정씨 참판 충경(忠敬)의 딸과 여산송씨 판중추(判中樞) 복원(復元)의 딸이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1450년 부왕인 세종대왕도 그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 승하하였다. 1463년(세조 9) 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 2014. 10. 11.
(태종) 성령대군 이종 [소경공], 삼한국대부인 창령성씨 소경공 성령대군 이종 태종대왕의 4남이며 세종대왕의 동생으로 휘는 종(?), 시호는 소경(昭頃). 8세에 취학하고 1414년(태종 14)에 성녕대군으로 책봉되었으며 1417년(태종 17)에 대광보국 숭록대부 계급에 올랐다. 창녕성씨(1417∼ ?) 좌찬성 희정공(僖靖公) 억(抑)의 딸을 부인으로 맞고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첩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대군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활을 쏠 때 백발백중이므로 태종대왕 양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18년(태종 18)에 병환이 생겨 태종대왕이 친히 치병하고 어루만지며 쾌유하기를 빌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해 2월 5일 14세의 어린 나이로 별세하였다. 태종대왕은 크게 슬퍼하며 2일간 수라를 물리치고 3일간 정사를 쉬었으며 30일 .. 2014. 10. 11.
(태종) 효령대군 이보 [정효공], 예성부부인 해주정씨 정효공 효령대군 이보 1396(태조 5)~ 1486(성종 17)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 이름은 보(補), 초명은 호(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이다. 1407년(태종 7)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졌으며,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활쏘기에 능해 항상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불교를 숭상하여 회암사(檜巖寺)의 중수와 흥천사탑전(興天寺塔殿)의 수리, 원각법회(圓覺法會) 개최 등 많은 불사를 주관했다. 또한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원각경〉 등도 언해·간행했다. 유신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문장에도 능했다. 성종대까지 왕실 어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2014. 10. 11.
(태종) 양녕대군 이제 [강정공], 수성부부인 광산김씨 양녕대군 강정공 이제 태종의 맏아들. 이름은 제(褆), 자는 후백(厚伯). 어머니는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402년(태종 2) 원자(元子)로 봉해졌으며, 1404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09년 이후 태종이 정사를 보지 않을 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정치에 참여했고, 명나라 사신 접대나 강무시솔행(講武時率行) 등 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세자로 책봉된 직후부터 학문에 게으르고 무절제하다고 하여 태종에게 지적을 받았으며, 나이가 들면서 방종이 더욱 심해져, 태학(怠學)·정강(停講)이 계속되었다. 또한 매와 개 등 완물(玩物)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군소배들과 어울려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 1417년에는 태종이 아무도 모르게 보관하라고 준 왕친록(王親錄)을 .. 201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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