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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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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2

(아동문학가) 동원 이원수 -월성이씨, 고향의 봄 작사- 1911년 11월 17일 경상남도 양산(梁山)에서 출생하였다.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다. 1922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다녔다. 6학년 때인 1926년 《어린이》지에 동요 《고향의 봄》이 당선되었다. 자신의 고향과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며 1935년 작곡가 홍난파(洪蘭坡)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마산공립보통학교 재학중 일본인들의 만행을 비난하는 글을 교내신문에 기고 하였다. 1927년 당시 중학교 과정인 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상고를 거쳐 현, 용마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기쁨사》의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 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의 장르를 개척했고 아동문학 이론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산공립상업학교 졸업후 함안금융조합에.. 2016. 10. 14.
(문신) 덕형 이원수 , 정경부인 평산신씨 [신사임당] 덕형 이원수 - 본관은 덕수. 자는 덕형(德亨).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된 이천(李蕆)이고 부인은 신사임당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아버지이다. 50세가 되던 해에 음직(蔭職)으로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임명되었고, 그 후 내섬시(內贍寺) 주부(主簿)·종부시(宗簿寺) 주부·사헌부 감찰 등을 지냈다. 당숙 이기(李芑)가 우의정으로 있을 때 그의 휘하에 잠시 있었다. 이기는 1545년(인종 1)에 윤원형(尹元衡)과 결탁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선비들에게 크게 화를 입혔던 사람이다. 어진 선비를 모해하고 권세만을 탐하는 이기의 영광이 오래 갈 수 없음을 상기시키면서 그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부인 신사임당의 권유를 받아들여 을사사화 당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 사임당.. 201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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