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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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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대군7

(인평대군 파) 복녕군 효헌공 이욱, 양천군부인 양천허씨 -전주이씨- 휘는 욱(栯), 시호는 효헌(孝獻). 대군의 장남이며 유덕대부(綏德大夫)에 봉해졌다. 배위는 지평 증 참판 양천허씨 열(悅)의 딸이다. 2024. 3. 23.
(문신) 백석 정중만, 향주 전주이씨 -해주정씨- 자는 여일(汝一) 호는 백석(白石) 필선 식(植)의 아들 14살에 현종이 인평대군의 딸과 혼인하게 하였고 1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젊어서부터 글씨를 잘 써서 대권안의 여러 편액을 썼다. 1689년 사옹원 직장이 되었다가 익위사 부솔(副率)로 옮겼다. 이듬해 죄없이 철산으로 귀양 갔다가 1694년에 풀려 돌아와 위솔랑(衛率郞) 형조감(刑曹監)으로 승진되고 안음현 현감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껴 쓰고 남는 것으로 제민고(濟民庫)를 처음 만들었다. 황간현감으로 나가 다스리는 일이 가장 뛰어난지라 청도군수로 승진되었다. 이어 함열 양근 진산의 각 군수와 의금부 도사 형조정랑 충훈부도사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전라도 찰방을 역임하였다. 1728년 한성주부로 원종공신에 참여하여 아버지 필선공을 이조판서로 추증 .. 2023. 11. 29.
(문신, 인평대군 장인) 동암 오단, 정경부인 청송심씨 -동복오씨- 조선시대 빈전도감도청, 전주부윤, 황해도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여확(汝擴), 호는 동암(東巖)·백암(白巖). 직장 오극권(吳克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어머니는 제주고씨(濟州高氏)로, 고경룡(高景龍)의 딸이다. 처는 청송군(靑松君) 심액(沈詻)의 딸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음보(蔭補)로 직장이 되었다. 이듬해 알성문과에 병과한 뒤 전적(典籍)이 되고, 형조와 공조의 좌랑이 되고 곧 뒤이어 병조정랑이 되었다. 1625년에 교리(校理)를 거쳐 1627년에 정언이 되었으며, 이듬해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그뒤 1635년과 그 이듬해에 수찬(修撰)·장령(掌令) 등 청환(淸宦)을 역임하였다. .. 2023. 2. 21.
(인평대군 4남, 용성대군) 복평군 이연 [효익공], 완산군부인 전주최씨 효익공 복평군 이연 휘는 연(?), 시호는 효익(孝翼). 대군의 4남이며 1872년(고종 9)에 특명으로 인조대왕의 4남 용성대군(龍城大君)의 계자로 출계했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 때 별세했으며, 배위는 좌랑 완산최씨 영세(永世)의 딸이며, 묘는 합폄이다. 2014. 10. 12.
(인평대군 3자) 복선군 이염, 군부인 임천조씨 복선군 이염 휘는 염(쨲), 대군의 3남으로 사은사로 청나라에 내왕하였으며,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복창(福昌) · 복선(福善) · 복평(福平) 등 삼복(三福)으로 불리는 삼형제가 희생되었다. 횡피죄명으로 복주되었다. 묘소는 광주군 언부면 비정리이었고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되었다. 고종태황제의 특명으로 완릉군이 입후되었으며 배위는 군수 임천조씨 시형(時馨)의 딸이다. 2014. 10. 12.
(인평대군 2자) 복창군 이정, 군부인 창원황씨 복창군 이정 휘는 정(楨), 대군의 2남으로 진하(進賀) 겸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청나라에 파견 되었으나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자 서인이 득세를 하게 되므로 1674년(현종 15)에 예론(禮論)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들은 숙종으로부터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사건(油渥濫用事件)으로 왕은 더욱 남인들을 꺼려하게 되었다. 이 때 서인 중 김석주 · 김익훈 등이 허적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 · 복선 · 복평군 3형제와 같이 역모(逆謀)한다고 고발하여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복창군의 3형제와 허견 · 허적 · 윤휴도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일파도 옥사(獄死) · 사사(賜死) 파직, 유배되었다. 이로써.. 2014. 10. 12.
(인평대군 장자) 복녕군 이욱 [효헌공], 양천군부인 양천허씨 효헌공 복녕군 이욱 복녕군(福寧君, 1639년 ~ 1670년 음력 10월 15일)은 조선 시대의 왕족이다.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의 3남인 인평대군의 장남이다. 또 고종은 복녕군의 직계 후손으로, 복녕군의 7세손이 된다. 효종이 즉위한 후인 1651년(효종 2년) 음력 6월 20일 정식으로 복녕군(福寧君)에 봉작되었다. 이후 1655년(효종 4년) 음력 4월 22일에 종실들에게 시행한 시험에서 합격을 하여 특별히 가자되고, 1662년(현종 3년) 음력 2월 14일에는 소덕대부(昭德大夫)가 가자되었다. 복녕군은 1670년(현종 11년) 음력 10월 15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복녕군은 고종 즉위 후인 1864년(고종 원년) 음력 7월 9일 효헌(孝獻)의 시호를 받았다. 201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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