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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용서 윤원거, 정부인 안동권씨, 정부인, 정부인 광산김씨, 정부인 연일정씨

by 보현당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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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윤원거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호(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제기하였으나 이때 적에 의해 강화도에서 아버지 윤전이 죽자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한 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산(尼山)[현 충청남도 논산시의 옛 지명]에 은거하며 윤순거(尹舜擧),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등의 종형제들과 함께 학문에 몰두하였다. 1658년(효종 9)부터 추천되어 공조좌랑과 공조정랑, 종부시주부,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사헌부지평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670년(현종 11) 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상소를 올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논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청요직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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