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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릉

석릉(碩陵) - 희종(熙宗)

by 보현당 201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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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릉(碩陵) - 희종(熙宗)

 

고려 희종(재위 1204∼1237)의 릉이다.  희종은 신종의 첫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이며, 부인은 성평왕후 왕씨이다. 1204년 왕위에 올랐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으로 갔다. 고종 24년(1237) 57세의 나이로 죽자 낙진궁으로 옮겼으며, 10월에 덕정산 남쪽에서 장례를 지내고 석릉이라 하였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무덤을 쌓았는데, 그 뒤 석물도 부서지고 무너진 무덤을 1974년 손질하여 고쳤다. 석릉 주변에는 최근에 고려시대 귀족의 무덤이라 생각되는 돌방무덤(석실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비(妃)는 성평왕후 임씨(成平王后任氏)이다. 1200년(신종 3) 태자로 책봉되었고, 1204년 신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1205년(희종 1) 즉위에 공이 있었던 최충헌(崔忠獻)을 문하시중 진강군개국후(門下侍中晋康郡開國侯)에 봉했으며, 이듬해 다시 진강후(晋康侯)에 봉하고 흥녕부(興寧府)를 세우게 했다. 그러나 이후 최충헌의 횡포가 심해지자 1211년 내시 왕준명(王濬明) 등과 함께 그를 죽이려다 실패, 도리어 폐위되어 강화(江華)로 쫓겨났다가 자란도(紫鸞島)에 옮겨졌다. 1215년(고종 2) 다시 교동(喬桐)으로 옮겨졌다가 1219년 개경으로 봉영(奉迎)된 후 셋째 딸 덕창궁주(德昌宮主)를 최충헌의 아들 성(珹)과 혼인시켰다. 1227년 복위의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최우(崔瑀)에 의해 다시 강화로 쫓겨났다가 교동으로 유배되어 1237년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죽었다. 능은 석릉(碩陵 : 인천 강화군 소재)이다. 시호는 성효(誠孝)이며, 묘호는 정종(貞宗)이라 했다가 희종(熙宗)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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