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경공 낭간 류성원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瑯玕). 아버지는 사인(舍人) 사근(士根)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1445년 집현전저작랑(集賢殿著作郞)으로 〈의방유취 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1447년 문과중시에 합격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다음해에는 〈고려사절요〉를 편찬할 때 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이극감(李克堪) 등과 함께 열전(列傳)을 담당하여 찬술했으며, 춘추관기주관으로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뒤 집현전에 정난녹훈(靖難錄勳)의 교서(敎書)를 만들도록 명하자, 집현전교리로 있던 그는 혼자 남아서 협박에 견디지 못하고 교서를 작성했다. 이해 11월 장령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책정의 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54년 〈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1455년 6월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그는 박팽년·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1456년 성균관사예 김질(金礩)의 고변으로 이 사실이 탄로나자 자결했다. 그뒤 남효온(南孝溫)이 〈추강집 秋江集〉에 육신전을 실어 널리 알려졌다. 1691년(숙종 17) 관작이 회복되었고,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노량진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 노운서원(魯雲書院), 영월 창절사(彰節祠)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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