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대장군 정초
3세(世)휘(諱) 초(初일명:礎) 대장군공(大將軍 公)께서는 조선 제3대 태종(太宗) 때에 전라도(全羅道) 해군(海軍)과 육군(陸軍)을 총할(總轄)하는 도원수(都元帥)에 임명(任命)되었으며 곧 이어 평안도(平安道 )육해군(陸海軍)을 총지휘(總指揮)하는 도총수(都摠帥)인 진서 대장군(鎭西大將軍)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公)께서는 선천적인 성격이 강직(剛直)하여 남에게 굴하지 아니하였으며 기국(氣局이) 넓고 위대(偉大)하였고, 지(智)와 용(勇)이 뛰어나 무장(武將)으로서 그 불의(不義)를 용납지 아니하였다. 조선 왕조 실록에 의하면 공(公)이 전라도 진무사(全羅道鎭撫使)로 있을 때 왜적(倭賊)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도 진무사(都鎭撫使)인 이지실(李之實)의 의(義)롭지 아니한 행동을 보고 발끈 분발(奮發)하여 지실의 의롭지 못한 행동에 단호히 항거(抗拒)하여 그의 명령을 거절하였다. 조정(朝廷)의 사간원(司諫院)에서 하관(下官)으로서 상관(上官)의 명령에 복종치 아나하였다하여 공(公)의 죄를 상(上)께 청하였다. 왕(王)은 오히려 지실의 실책(失策)을 꾸짖고 지실의 직(職)을 교체(交遞)시키고, 공(公)으로 하여금 전라도 도절제사(全羅道都節制使)와 겸하여 도진무사(都鎭撫使)로 임명(任命)하였다. 공(公)이 호남(湖南)의 군영(軍營)의 도원수(都元帥)로 있을 때 여러 번 왜적(倭賊)의 침공(侵攻)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번번이 왜적을 격파(擊破)함에 공(公)의 위대(偉大)한 공(功)을 가상히 여겨 북방 요충지(北方要衝地) 평안도(平安道)의 육해군(陸海軍)을 총할(總轄)하는 도총수(都摠帥)인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에 영전(榮轉)되었다. 공(公)께서는 남쪽의 왜적과 북쪽의 오랑캐를 물리치시고 우리나라의 국방(國防)을 튼튼히 하신 분이다.
대장군공 묘소는 실전이었으나 오랜 노력 끝에 구미웅곡선영에서 찾아 묘역을 성역화 하였고 여주대령사경내 있던 실단비는 후손들의 뜻에 따라 그대로 모시기로 하였다. 대장군공 할아버지 후손으로 한벽재 정철견, 신당 정붕 등 학자들이 많이배출되었다.
<< 여주 대령사 경내 설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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