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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민족대표 33인 최성모
1874년 ~ 1937년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19년 2월, 당시 중앙기독교청년회(中央基督敎靑年會) 간사로 있던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전해듣고 이에 적극 호응하기로 한다. 2월 26일 이승훈(李昇熏), 오화영(吳華英), 이필주(李弼柱), 함태영(咸台永), 안세환(安世桓), 이갑성(李甲成), 박희도 등 기독교측 대표들과 한강(漢江) 인도교위에서 만나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에 서명 날인할 기독교측의 대표자를 뽑았다. 이튿날인 27일에는 그의 집에서 기독교측 대표들과 다시 만나 독립선언서와 기타 서류의 초안을 회람한 후, 이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한다. 28일 밤에는 재동(齋洞) 손병희의 집에서 천도교(天道敎)ㆍ기독교ㆍ불교(佛敎)측의 민족대표들과 만나, 독립운동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민중교화사업과 전도사업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성모 [崔聖模]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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