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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묘

(고려무신) 위열공 김취려 -언양김씨-

by 보현당 2016.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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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열공 김취려

김취려(金就礪)   ?~1234(고종21) 고려의 장군(將軍), 예부 시랑(禮部侍郞) 부(富)의 아들. 음관(蔭官)으로서 정위(正尉)에 임명된 뒤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將軍)으로 동북계(東北界)를 진압한 후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1216년(고종 3) 거란병(契丹兵)이 가족들을 이끌고 의주(義州)·영주(寧州)·삭주(朔州) 등지에 쳐들어와 식량을 약탈하고 그곳을 생활 근거지로 삼으려 하자 후군 병마사(後軍兵馬使)로 그들을 크게 물리쳐 금오위 상장군(金吾衛上將軍)이 되고, 이듬해 다시 전군 병마사(前軍兵馬使)가 되어 충청도 제천(堤川)에까지 침입한 거란병을 크게 무찔러 격퇴했다. 1218년(고종 5) 그들이 다시 침입하자 병마사(兵馬使)가 되고 원수 조충(趙퀖)과 함께 이를 격퇴, 이듬해 강동성(江東城)을 근거하여 저항하는 거란병을 합격하기 위해 몽고에서 군사 1만을 보내고 동진(東眞)에서 2만을 보내 오자 몽고·동진과 연합하여 거란의 유종(遺種)을 분쇄했다. 또한 이해 한순(韓恂)·다시(多知) 등이 의주(義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 1222년(고종 9) 참지정사·판호부사(參知政事判戶部事), 뒤에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守太尉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에 이르렀다. 성미가 강직 청백하여 군기를 엄정히 하고 부하를 고루 아꼈고, 전장에서 기발한 계교를 써서 큰 공을 세웠다. 조충과 함께 고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 시호는 위열(威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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