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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통정 강회백, 동래군부인 동래정씨 -진주강씨-

by 보현당 2016.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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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 강회백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조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제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하였다. 1385년 밀직부사로서 나라에 다녀왔으며, 1388년 창왕이 즉위하자 밀직사로 부사 이방우(李芳雨)와 함께 나라에 다녀왔다. 창왕을 폐할 때 지밀직(知密直) 윤사덕(尹師德)과 함께 부고(府庫)를 봉한 공이 있어, 1389년 공양왕이 즉위하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조준(趙浚), 서균형(徐均衡), 이지(李至)와 함께 세자사(世子師)에 임명되었으나 나이 어린 것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겸 이조판서에 있을 때, 상소하여 불교의 폐해를 논하고 한양 천도를 중지하게 하였으며,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로 나갔다가 돌아와 정당문학 겸 사헌부대사헌(政堂文學 兼 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정몽주(鄭夢周)의 사주를 받은 간관(諫官) 김진양(金震陽) 등이 조준·정도전(鄭道傳)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 대관을 거느리고 상소하였는데, 1392년(공양왕 4) 정몽주가 살해된 후, 처음에는 형인 강회계(姜淮季)공양왕의 부마였기 때문에 탄핵을 면했다가, 진양(晋陽)에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후 1398년(태조 7)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  군부인 동래 鄭氏(정씨), 1390년 별세하였다. 아버지는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양도공(良度公) 우곡(愚谷) 양생(良生), 조부는 밀직 봉산군(蓬山君) 호(瑚), 증조부는 판도진사사 유의(惟義), 외조부는 찬성 문정공 순흥 안축(安軸)이다. 묘는 임강현 도원역 뒤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공의 묘 오른편에 단을 세웠다. 3남 2녀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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