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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평(海平), 호는 신덕재(新德齋)이다. 윤두수(尹斗壽)의 7대손이며,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낸 윤세겸(尹世謙)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윤발(尹潑)이고, 아버지는 윤득실(尹得實)이다. 윤취동(尹取東)[1798~1863]은 어릴 때부터 손수 나무를 하고 불을 때며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자신의 손가락을 찢어 피를 마시게 하였고,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는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며 소원을 빌었다.
큰아버지를 아버지 같이 섬겼고,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았다. 친족과 외족을 위해 모두 위토전[산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는 밭]을 마련해 두기도 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힘썼으며, 관아의 돈을 써서 없앤 친족을 위하여 자신이 이리저리 융통하여 대신 돈을 갚기도 하였다.
비를 세울 때 칭송하는 사람들이 길에 가득하였으며, 윤취동의 효성으로 인해 조정에서는 조상을 신원(伸寃)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관직을 추증(追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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