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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류관순 열사 분묘 합장 -이태원 공원묘지 분묘 합장지-

by 보현당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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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공주에서 전도하던 감리교 선교사 부인(미국이름 엘리스 샤프)의 권유로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보통과를 졸업한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3월 10일 모든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유관순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갔다.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지휘하였으며, 일본 헌병대는 유관순의 부모를 죽이고 유관순을 체포하여 검사국으로 이송하였다. 유관순은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되고, 다시 경성 복심법원에 항소하여 징역 3년형이 언도되었다.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하였습니다. 1920년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여 수의를 해 입혔으며, 당시 서대문 감옥에서는 고문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하여 시신을 내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화학당 교사들의 항의로 시신을 내주었다고 한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 주례로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본의 군용기지로 전환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는 과정에서 유골이 없어졌기 때문에,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1947년 조직됨)에서 유관순의 고혼(孤魂)이라도 편히 쉬게 하고자 1989년 10월 12일 그의 고향인 천안시 병천면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招魂墓)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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