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5월 13일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 귀곡동(현 진주시 귀곡동)에서 아버지 정용근(鄭用根, 1906. 10. 3 ~ 1941. 11. 14)과 어머니 진주 하씨 하차임(河且任, 1906. 1. 29 ~ 1973. 4. 22)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진주공립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친구 하익봉, 강필진, 박노근, 김상훈(金相勳) 등과 함께 독서동아리인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이 동아리를 통해 한국사를 공부, 토론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로, 특히 박노근의 아버지 박기동(朴琦東, 1910. 4. 2 ~ ?)와 하익봉의 숙부가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졸업 후 모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 가담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다가 1944년 9월 진주공립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 건설공사 현장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천막으로 지은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며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때 정규섭을 비롯한 광명회 회원들은 학생들에게 우리말 사용을 생활화할 것과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파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결국 9월 23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그는 체포 직후 진해군 헌병대 영내에서 약 40일 동안 구금된 채 학교 내외에 퍼져 있는 항일운동과 조선독립을 위한 동아리 활동의 존재 유무 등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으며 갖은 체벌과 고문을 당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7명의 동지들과 함께 군용트럭으로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부산형무소에 미결수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가 1945년 6월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 거주하면서 교편을 잡는 한편, 진주향교 전교로 재임하면서 인재 육성에 힘썼다. 2006년에는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했고,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그 뒤 2016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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